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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이정하 지음 / 문이당 / 201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처럼 온종일 비가 내리는 날이면 아무래도 메마른 감성 한쪽이 허물어지게 마련이다. 이런 날 감성을 극대화시킬 책을 읽는 것도 좋지 않을까? 마침, 이렇게 비 내리는 날 ‘감성 시인’이라 불리는 이정하 시인의 시집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를 읽었다. 시집을 읽고 왜 시인을 가리켜 이 시대 최고의 ‘감성 시인’이라 서슴없이 말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 시집은 시와 시로 못다 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시로 못다 한 이야기’는 시인의 표현인데, 이 부분은 시에 대한 해설이라고 볼 수도 있겠고, 시를 잉태한 삶의 못자리에 대한 설명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때론 짧은 에세이이기도 하고, 때론 이 부분 역시 또 하나의 시가 아닌가 여겨지기도 하는 부분이다.
이렇게 두 가지, 시와 시로 못다 한 이야기를 함께 엮으며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다시 스무 살이 되고 싶다.” 그래서 일까? 시인의 시를 읽고 있노라면 다시 스무 살의 나이, 그 뜨겁던 순간, 열정과 사랑으로 가득하였으며, 또 한 편으로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아픔을 반복하던 그 시절을 떠올려보게 된다. 이정하 시인, 그의 시를 묵상하다보면 때론 젊은 시절의 철없던 사랑이 떠오르기도 하고, 때론 철부지의 서툰 사랑과 이별 그 상처와 아픔 등을 떠올리게도 된다. 뿐 아니라, 이제는 중년의 나이로 훌쩍 지나버린 오늘의 자리에서의 사랑도 떠올리게 된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아내, 가족들을 향한 내 사랑이 과연 시인이 노래하는 것처럼 절절한지를 돌아보게도 된다. 그래서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멋지게 사랑하겠다는 다짐도 하게 한다.
수많은 사랑의 시들로 시집은 가득하다. 그걸 일일이 언급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이런 글귀가 시인의 시들을 한 마디로 설명해주지 않나 싶다. “세상에 나 있는 수없이 많은 길 중에서 / 어느 한 길도 너를 향하지 않은 길은 없어” 와~ 참 멋진 말이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내가 어디로 향하든, 내가 어디를 바라보든, 내가 어떤 감정에 쌓여 있든 여전히 향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까. 이런 사랑이라면 그 결과를 떠나 이미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러한 시인의 시와 해설 뿐 아니라, 모든 시와 해설에 함께 하고 있는 멋진 사진들을 감상하는 것도 좋다. 한 마디로 눈 호강을 할 수 있어 좋다.
감성시인이라고 해서 시인은 사랑만을 노래하는 것은 아니다. 때론 삶 속에 대처해야 하는 우리의 모습을 노래하기도 한다. 그런 시들 가운데 몇 가지 옮겨본다.
바람 불지 않으면 세상살이가 아니다. / 그래, 산다는 것은 /
바람이 잠자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 그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
바람이 약해지는 것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 그 바람 속을 헤쳐 가는 것이다. //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볼 것, / 바람이 드셀수록 왜 연이 높이 나는지
< 바람 속을 걷는 법 > 일부
그래, 시인의 노래가 내 다짐이 되길 소망해본다. 비록 지금 내 삶에 바람이 불어 힘겹다 할지라도, 그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기자. 그리고 헤쳐 나가자. 그 바람을 타고 높이 오를 때까지.
이런 시도 참 좋다.
내가 외로울 때 / 누가 나에게 손을 내민 것처럼 / 나 또한 나의 손을 내밀어 /
누군가의 손을 잡고 싶다. / 그 작은 일에서부터 / 우리의 가슴이 데워진다는 것을 /
새삼 느껴 보고 싶다. // 그대여 이제 그만 마음 아파하렴.
< 조용히 손을 내밀었을 때 > 전문
누군가 내밀어 주는 손을 통해 내가 위로받고 힘을 얻었듯이, 이젠 누군가 힘겨워 하는 이들을 향해 내 손을 내밀 수 있다면. 그리고 이런 내민 손들로 인해 세상이 조금씩 따스해지고, 아름다워질 수 있다면 좋겠다. 여러모로 감성에 젖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