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 제21회 전격 소설대상 수상작
기타가와 에미 지음, 추지나 옮김 / 놀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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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기상, 6시 46분 전철을 타고, 8시 35분 회사 도착하여 컴퓨터를 켜고 업무시작. 12시 15분 점심시간 식당까지 걸어서 3분. 줄서기 15분. 음식 나오기까지 3분. 먹는데 5분. 12시 58분 자리에 복귀. 21시 15분 마침내 퇴근. 22시 53분 귀가. 25시 0분 취침.

 

주인공 아오야마 다카시의 하루 일과다. 여기에 곱하기 6을 하면, 1주일의 일과가 된다. 본격 직장인 소설인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는 이처럼 직장인의 팍팍한 일과를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인쇄 관련 중견 기업에 입사한 다카시는 꿈과 희망, 그리고 의욕에 넘쳐 회사 생활을 시작하였지만, 지금은 온통 잿빛으로 물들어 버렸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상사의 불호령을 맞을 뿐. 일요일도 온전한 휴일이 되지 못한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휴대전화 저편에서는 부장의 고함소리만이 가득하다. 그것도 자신의 업무와는 무관한 것임에도 그 불호령이 왜 자신의 몫이어야만 하는지. 또한 그나마 이룬 성과마저 가로채는 동료 아닌 동료들. 아무런 보람도 느끼지 못하는 격무에 여자 친구는커녕 친구도 만나지 못하고 하루하루 지쳐만 가는 일과. 과연 다카시에게 미래는 있긴 있는 걸까?

 

자신의 미래가 없다 여기며, 전철 승강장에서 그대로 정신을 잃고 떨어져 잠들어 버리길 원하는 다카시. 전철 선로로 떨어지려는 순간, 그의 오른팔을 누군가 꽉 붙잡는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야, 오랜만이다! 나야, 야마모토?”라 말하는 사내. 처음 보는 얼굴인데, 초등학교 동창이란다. 아니, 3학년을 마치고 오사카로 이사 갔다는 야마모토. 이렇게 우연한 만남은 일과 후에 종종 만나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위로받고 힘을 내게 되는 관계로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야마모토를 만나는 가운데, 다카시는 야마모토가 자신의 동창 야마모토가 아님을 알게 되고, 더 나아가 자신을 야마모토 준이라 밝힌 야마모토는 이미 3년 전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한 회사원임을 알게 된다. 얼굴도 완전히 똑같은. 과연 그동안 다카시를 만난 야마모토는 유령일까, 아님 또 다른 누구인 걸까?

 

소설을 읽어 나가는 내내 어디선가 읽은 것 같은 기시감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동창이라며 접근하는 야마모토의 모습, 그리고 함께 우정을 쌓아가는 모습, 어디에선가 읽은 느낌이 든다. 분명 처음 읽는 소설임에도. 어쩌면 소설은 그만큼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이야기란 의미일까?

 

아무튼 소설은 금세 읽혀지는 짧은 내용이다. 하지만, 직장인들에게는 공감 백배할 내용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직장인들의 애환만을 담아내는 것만은 아니다. 아울러, 제목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힘겨운 회사를 이젠 관두고 자신만의 일을 찾아 나서길 권장하는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 것 역시 아니겠다. 사실 이 책은 월급쟁이보다는 보다 더 자기 발전적인 일을 찾아 나서라는 의미에서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 소설이 진짜 이야기하는 것은 극단적 선택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때론 도망치는 법도 알아야 함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설 속의 자살한 야마모토 준의 어머니가 주인공 다카시에게 하는 말을 보자.

 

제가 가장 원통한 건 말이죠, 그 아이에게 소중한 것을 가르쳐 주지 못한 일이에요. 도망치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어요. 나는 그걸 깨닫지 못했어요. 그 아이는 어릴 때부터 성실하고 어떤 일이든 열심히 했죠. 나도 남편도 늘 힘내라, 열심히 해라 격려하면서 길렀고요. 괜찮아, 너라면 할 수 있으니까 힘내라고 말이에요.(178쪽)

 

물론, 우린 힘내야 한다. 열심히 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을 만큼 힘겨움에 짓눌릴 때엔 과감히 벗어버리는 것 역시 용기다. 삶을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또 다른 전진을 위해 잠시 뒤로 물러서자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은 말한다.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이 소설은 이처럼 힘겨운 상황에서 도망치는 것도 하나의 용기임을 말하며, 더 나아가 이 도망이 포기가 아닌, 누군가 삶을 포기하려는 이들을 돕는 또 하나의 손길로 나아가는 모습으로 승화됨을 보여준다. 직장인들의 애환을 오롯이 느낄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그런 애환을 딛고 또 다른 꿈을 품고 나아가는 통쾌함과 감동이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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