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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멈춘 시간, 11시 2분 - 십대가 알아야 할 탈핵 이야기 ㅣ 꿈결 생각 더하기 소설 1
박은진 지음, 신슬기 그림 / 꿈결 / 2015년 12월
평점 :
품절
우리민족은 일제치하 36년이라는 뼈아픈 시간이 있었기에 일본의 패망에 대해 희열의 감정을 갖게 마련이다. 일본의 패망은 곧 우리의 독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일본에겐 패망, 우리민족에겐 독립을 안겨준 엄청난 살인 무기에 대해 자칫 간과하고 넘어갈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우리에게 독립을 열어준 핵폭탄에 대해 고마운 감정과 그런 무기를 만들어 과감히 실전에 투입한 미국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마저 없지 않다.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 아닐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폭탄은 우리민족을 통곡의 세월로 몰아넣고, 여전히 씻기지 않을 상처를 안겨준 전범들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수많은 애매한 백성들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날아남은 자들마저 평생을 피폭의 굴레 아래 살아가게 만들었다.
우린 결코 이들의 희생과 고통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는 전범을 향한 심판과는 별개로 접근해야만 하지 않을까? 게다가 두 도시에 떨어진 핵의 피해자 가운데는 일본에게 끌려가 강제 노역을 하던 우리 조선인들 역시 수없이 포함되어 있음을 기억해야만 한다(원폭 피해자가 히로시마에 5만, 나가사키에 2만 명 가량, 원폭 사망자는 히로시마 3만, 나가사키 1만 명 가량이라고 한다.).
이처럼 엄청난 상처를 남긴 피폭사건에 대한 소설이 바로 『세상이 멈춘 시간, 11시 2분』이다. 이 소설은 그 주요 독자층을 청소년들에게 둔 청소년소설이다. 스토리 자체도 흥미진진하게 진행되어지며 아울러 우리로 하여금 핵의 엄청난 피해와 상처를 돌아보게 만들며, 아울러 전쟁후의 일본의 바르지 못한 대응에 대한 고발도 함께 하고 있는 소설이다.
부모님과 함께 나가사키 여행을 다녀왔던 유석은 어느 날 밤부터 일본소녀 귀신이 찾아오곤 한다. 바로 나가사키 원폭의 피해자인 미유키인데. 얼굴이 유리파편 투성이고, 목이 마르다고 신음하며 유석에게 접근하는 미유키의 영혼. 과연 이 만남은 유석으로 하여금 무엇을 알게 하며, 어떤 생각과 행동으로 이끌게 될까?
이 소설은 우리들에게 핵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절실히 느끼게 한다. 또한 그 핵의 피해자들은 모두 죽어 마땅한 악인들이 아닌, 우리와 같은 소시민들이었음도 돌아보게 한다. 뿐 아니라, 그 피해자 가운데는 일본인들만이 아닌 우리 조선인 역시 수없이 많았음도 이야기한다. 아울러 똑같은 피폭 피해자들임에도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떤 부당한 차별을 당해왔는지도 알려준다.
더 나아가 이런 핵의 위험성 뿐 아니라, 일제강점기의 조선인 강제연행 등 그 잔혹사를 이야기하며, 그런 만행에도 불구하여 여전히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 일본의 모습을 꼬집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군함도를 들 수 있다. 얼마 전 강제노역에 대한 내용을 명시하겠다는 조건하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지만, 실제로는 강제노역에 대한 내용은 전혀 말하지 않는 뻔뻔한 일본의 행태. 강제 연행되어 강제노역을 했던 수많은 조선인들의 아픔, 그 통곡의 세월에 대해 여전히 침묵함으로 그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는 그 모습. 이런 내용이 탈핵과 함께 잘 버무려져 있다.
「십대가 알아야 할 탈핵 이야기」라는 소제목이 붙어 있는 이 책은 오늘날 우리들이 직면한 핵의 문제점에 대한 언급은 조금 약하다. 왜냐하면 스토리 자체가 멈춰버린 시간 11시 2분(나가사키에 핵이 떨어진 시간)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당시의 두 가지 큰 축 조선인의 강제노역의 아픔, 그리고 피폭 피해에 맞춰져 있다.
이 소설을 통해, 우리 청소년들이 핵의 무서움, 그리고 일제가 남긴 한과 눈물을 생각하고, 아울러 원폭으로 죽어가고 고통당하는 수많은 영혼들에 대한 돌아봄을 행할 수 있다면 좋겠다. 더 나아가 세계 추세와는 역행하며 핵의 의존도를 더욱 늘려나가는 우리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경각심도 우리 청소년들이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