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리석은 철학자
로랑 구넬 지음, 김주경 옮김 / 열림원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철학교수 빅터는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가 아마존의 원주민들을 취재하러 갔다가 싸늘한 시체로 돌아옴으로 자신의 아내를 살해한 아마존 원주민들에게 복수를 결심하고 아마존으로 향한다. 과연 빅터의 복수는 성공하게 될까? 또한 정말 아내는 원주민들에게 살해된 걸까?
로랑 구넬의 소설 『어리석은 철학자』는 아내를 살해당한 철학교수의 복수를 통해, 오늘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우화소설이다. 빅터가 원주민들을 철저히 무너뜨리기 위해 택한 복수의 방법들을 보면, 오늘 우리의 삶을 자연스레 돌아보게 된다.
먼저, 빅터는 원주민들을 자연으로부터 떼어놓으려 한다. 그리고 다음엔 공동체 생활을 하는 원주민들을 각자 떼어놓는다. 공동체가 아닌 개인주의를 심어 주는 것이다. 아울러 이렇게 따로따로 집을 짓고 살게 한 후에는 서로를 비교하는 습관을 갖게 하며, 경쟁심을 부추긴다. 뿐 아니라 언제나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살아가는 원주민들로 하여금 자꾸 부정적인 내용들을 주입시킴으로 부정적 사고를 은연중 심어주며, 부정적인 사건들을 통해 불쾌감을 끌어내려 한다. 뿐 아니라, 언제나 현재의 순간을 즐기며 살아가는 원주민들에게 과거를 되씹게 하고, 미래를 두려워하게 함으로 현재의 순간을 즐기는 행복도 잃어버리게 한다. 최종적으로는 저급한 물질들에 집착하게 함으로 이러한 탐심을 통해, 빅터는 원주민들을 향한 복수의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아가던 원주민들을 불행의 나락으로 몰아가려는 것이 빅터의 복수 계획이다. 이를 통해, 오늘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오늘 우리의 삶은 이미 빅터가 원주민들에게서 행복을 빼앗아가려는 복수, 그 시나리오 그대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음이 놀라울 뿐이다.
이제 빅터의 복수로 인해 마을 사람들은 예전보다 훨씬 바빠졌고, 뭔가 많은 것들을 갖게 되었다. 뿐 아니라, 각자 개인적인 공간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이 행복할까? 아니다. 도리어 행복을 잃어버렸다.
마을의 생활도 변했다. 그것도 좋지 못한 방향으로. 마을 사람들은 각자 자기 집 안에서만 살았고, 예전보다 훨씬 덜 웃었으며, 언제나 근심 어린 표정으로 지냈다. 그들은 삶이 그 자체로 선물이며 하늘의 은총이라는 사실을 잊은 것 같았고, 생의 매 순간이 놀랍도록 멋진 것이라는 사실도 잊은 듯했다.(245쪽, 소설속의 원주민 샤먼 엘리안타의 독백)
이제 그들은 쿠푸(소설 속에서 돈의 역할을 하는 과일)를 얻기 위해 매일매일 하루 종일 뼈 빠지게 일하고 있어. 그게 안 보여? 그게 다 그들에게 아무 쓸모도 없는 온갖 것들을 사기 위해서라고. 그들은 미쳤어. 이제 자기 자식들도 제대로 돌보지 않는단 말야. 왜지? 우리가 그들을 모든 것들로부터 단절시켰으니까! 우린 그들이 미친 삶을 살게 만드는데 성공한 거야! 그런데도 자넨 이런 것들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감히 말할 수 있어?(318쪽, 빅터의 복수를 대행하는 크라쿠스가 부하동료에게 한 말)
놀라운 것은 원주민들의 변화된 모습이 오늘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과연 오늘 우리가 이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 불행인지도 모르고 마치 불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은 누구의 복수 탓일까?
또 하나 생각해보게 되는 것은 철학교수 빅터의 앎과 삶의 괴리이다. 소설 속의 빅터가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철학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다. 심지어 그의 철학과 삶의 멘토가 아우렐리우스인 듯 싶다. 그런데, 아우렐리우스는 이렇게 말한다.
“악인들에게 복수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그들을 대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 앎은 빅터의 분노 앞에 아무런 소용이 없다. 빅터는 더 철저하게 원주민들을 파괴하려 한다. 어쩌면 우리의 삶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우린 참 많은 것을 배우고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앎은 삶과 별개의 모습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생각해보게 되는데, 그건 빅터가 복수를 성공하게 되지만, 복수는 결코 그에게 어떤 위로나 평정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도리어 빅터는 수치심과 후회로 괴로워하게 될 뿐이다. 그렇다. 작가는 결국 복수가 아닌 용서가 그 사람을 고통에서 구원하게 될 것을 이야기한다. 오늘 우리에게 이런 용서의 영성이 깃들길 소망해 본다(물론, 용서는 타인이 결코 강요할 수 없는 부분임도 우린 기억해야만 한다. 용서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향해 강요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주변인들이 피해자를 향해 용서의 필요성을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오늘 우린 이런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용서를 들먹이는 강요 아닌 강요를.).
이 소설, 『어리석은 철학자』 현대의 삶에 대해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며, 소설의 전개 역시 흥미진진하게 진행되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만한 좋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