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깊은 슬픔이 말을 걸때
한순 지음 / 나무생각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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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 시인의 첫 시집, 『내 안의 깊은 슬픔이 말을 걸 때』를 처음으로 읽은 후에 드는 주된 감정은 슬픔, 공허함, 쓸쓸함, 덧없음 등의 감정이었다. 왠지 가슴 한 쪽이 스멀스멀 비어가는 것만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별로 달갑지 않은 감정이다.

 

며칠이 지난 후 다시 한 번 시집을 들어 읽어본다. 이번엔 처음 시집을 접했을 땐 보이지 않던 게 보인다. 처음 왠지 알 수 없는 공허함과 쓸쓸함이 느껴진 이유는 어쩌면 시인을 떠나버린 시간들에 대한 감정이 이입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쩌면 찬란한 젊음의 시간들과는 이별해버린 중년의 현실을 살아내고 있는 시인의 삶의 투쟁이 담겨 있기 때문 아닐까. 그렇다. 시간의 흐름은 결국에는 별로 달갑지 않은 쓸쓸함만을 우리에게 입혀준다. 하지만, 그 흐름 안에 우리가 견뎌내 온 삶이 오롯이 담겨 있다. 시인의 시들 역시 그렇다. 쓸쓸함 이면에 담겨진 삶의 흔적들이 보인다. 물론, 그 삶은 때론 고단하다. 그래서 시인은 노래한다.

 

건너편 은행 회전문은 사람들을 차례차례 삼키더니

고단한 발만 토해낸다

<중심을 수선하고> 일부

 

그렇다. 우리네 모습이 이렇다. 그 고단함 뒤에 남는 것은 기껏해야 땀 냄새 절은 부은 발뿐. 때론 감기에 걸리기도 하고, 몸살에 걸려 아파하기도 한다. 때론 아들도 남편도 나른한 오후의 낮잠을 즐기는 시간 “혼자 삶은 밤을 소리 없이 파먹고”<해독되지 않는 오후> 있어야 하는 외로움이 가득하기도 하다. 어차피 삶의 한 단면은 쓸쓸함 아닐까?

 

하지만, 시인의 시는 이러한 삶의 고단함, 세월의 쓸쓸함이 농익어 향으로 틔우게 된다. 시인의 시 가운데 다음의 시가 제일 마음에 남는다.

 

저렇게 농익을 때까지 / 한자리에 얼마나 앉아 있었던 것인가 //

비명도 지나가고 / 한숨도 지나가고 //

너를 낳아준 어머니의 한숨이야 말할 것 없겠고 //

터질 것처럼 붉은 해 두 알 / 업보를 다 덮어줄 푸른 손바닥 //

때 된 것들의 만남 / 향기가 낭자하다

< 연잎 아래 감 두 알 > 전문

 

어쩌면 우리 역시 농익은 열매를 거두기 위해, 고단함이 가득하고, 때론 군중속의 고독함에 몸을 떨게 될지라도 그럼에도 한자리에서 버텨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때론 비명도, 한숨도 가득한 삶이겠지만, 그런 세월을 한 자리에서 견뎌낸 후엔 내 삶 속에 향기가 낭자하게 되길 소망해본다. “때 된 것들의 만남 / 향기가 낭자하다” 이런 향기가 낭자한 그 날, 그 때, 그 만남을 기다리며, 오늘도 일상의 삶 속에 고단한 향내를 저축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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