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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필리아와 마법의 겨울 ㅣ 비룡소 걸작선 9
캐런 폭스리 지음, 정회성 옮김 / 비룡소 / 2015년 11월
평점 :
석 달 전 엄마를 잃은 오필리아는 언니, 그리고 아빠와 함께 낯선 도시로 왔습니다. 검 전문가인 아빠가 그곳 도시의 박물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게 되었기 때문이죠. 이제 그곳 박물관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는 오필리아는 3층의 <놀라운 소년> 벽화의 한 쪽에 문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그 문의 열쇠구멍을 통해 안을 들여다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안에는 한 소년이 갇혀 있었는데, 소년은 자신은 세상을 집어 삼키려는 겨울 여왕으로부터 세상을 지켜내기 위해 마법사들에게 선택받은 소년이라고 밝힙니다. 겨울 여왕과 맞서 세상을 구할 사람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 사람에게 마법의 검을 전해주기 위해 선택된 소년 마법사라는 거죠. 하지만, 겨울 여왕의 죄수가 되어 이곳에서 303년 동안을 기다렸다는 겁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오필리아는 결코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오필리아는 아동 과학협회의 회원으로서 과학적 사고 아니면 믿지 않는 똑똑한 아이거든요. 그런 그녀에게 소녀는 자신의 방문을 열 열쇠를 가져다 달라고 요청하는데, 과연 오필리아에게는 어떤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그리고 소년에게서 검을 받아 겨울 여왕과 맞서 세상을 구할 사람은 또 누구일까요?
이 판타지 소년소설은 박물관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공간이 박물관이라는 작은 곳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전혀 좁은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건 같지 않네요. 오히려 스케일이 큰 영화를 보는 느낌도 갖게 됩니다.
이야기는 선과 악의 대립구도를 보여줍니다. 세상을 얼려버리려는 겨울 여왕이 악이라면 이에 맞서 세상을 구하려는 이들이 선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그런데, 이 선의 자리, 구원자의 자리에 서게 되는 이들이 사실은 별 볼 일 없는 아이들이랍니다. 마법사들에게 선택된 소년은 용감하지도 강하지도 훌륭하지도 않습니다. 단지 착하기 때문에 마법사들에게 선택된 거죠. 그러니, 소년에게는 외형적 능력이라고는 없답니다. 마법도 신통치 않죠. 게다가 303년 동안 전혀 성장하지 않는 꼬마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감옥에 갇혀 있고, 마법사들이 이름을 가져가버려 자신의 이름조차 모르는 아이죠.
이런 소년을 구해주려는 오필리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천식을 앓고 있어 수시로 흡입기로 호흡해야만 하죠. 게다가 안짱다리에 겁쟁이랍니다. 이처럼 두 약자들이 과연 어마 무시한 겨울여왕을 상대로 이겨낼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오필리아와 마법의 겨울』이 가장 통쾌한 것은 이처럼 약자의 반란을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눈 여겨 보지 않는 약자들이지만, 이 약자들이 세상을 구원해 낸답니다. 얼마나 통쾌합니까.
또 한 가지, 오필리아가 소년을 도와 세상을 구해내는 것은 과학적 생각, 이성적 생각을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도리어 마음으로 생각할 때, 세상을 구할 수 있게 됩니다. 맞습니다. 때론 우리 내면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마음의 울림에 귀를 기울일 때, 세상을 구해낼 힘을 얻게 되는 거죠. 이것 또한 이 소설에서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과학적 사고에 익숙한 오필리아가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그런 가운데, 죽은 엄마의 음성도 듣게 되죠. 마음의 울림이 갖는 위대한 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네요.
‘소년’이 마법사들에게 선택된 이유 역시 큰 울림을 주네요. 소년이 선택된 것은 소년에게 능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지혜가 많아서도 아닙니다. 가문이 좋은 것도 아니죠. 단지, ‘착한’ 이유 하나입니다. 착하다는 것. 어쩌면 오늘 현대 사회에서는 무능함으로 여겨질 수 있는 덕목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코 아닙니다. 착한 것이 힘을 발휘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판타지가 아닐까요? 오늘 우리 사회에 이런 판타지가 가득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 착함의 판타지야말로 『오필리아와 마법의 겨울』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선물이 아닐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