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격 시작시인선 192
윤중목 지음 / 천년의시작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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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등단한 시인이 그 첫 시집을 26년 만에 출간했다. 시인이 시인으로서 직무유기(?)를 한 걸까? 시인의 프로필을 보니, 아마도 시인은 관심분야도 많고, 또한 아는 것도, 잘하고 좋아하는 분야도 많은 듯하다. 그랬기에 이 기간 동안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또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드디어 시집이 나왔으니, 시인도 무척 감개무량했을 것 같다.

 

이렇게 오랜 시간 잉태하여 드디어 출산한 그 시들은 과연 어떨까 하는 기대감으로 시인의 시를 접하게 된다. 첫 번째 시부터 시인의 시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첫 번째 시가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밥격>이다.). 윤중목 시인의 시는 결코 추상적이지 않다. 뿐 아니라 시인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시인만이 알 수 있는 시를 읊조리는 것도 아니다(솔직히 이런 시집을 제법 많이 접하며 얼마나 피곤하였던지, 휴~). 무엇보다 윤중목 시인의 시에는 삶이 있다. 그렇기에 생활자인 독자는 시인의 시에 공감하며 함께 아파하고, 함께 힘겨워 할 수 있다. 때론 시인이 고백하는 삶의 무게가 나의 것이 되기도 하며, 삶을 헤쳐 나가는 시인의 고뇌와 고민이 나의 것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좋다.

 

많은 시들이 좋았지만, 그 가운데 하나만 적어본다.

 

나무는 그렇게 세월을 견뎠다.//세월이 제 몸 삭혀 길러낸 비바람 쏘이며/

껍질에는 두툴두툴 검붉은 딱지가 앉았고,/속심 고갱이는 옹골지게 꼭꼭 여물어갔다./

세월이 올려댄 잔가지며 잎새들 떨림 소리는/밤사이 끈적끈적한 수액으로 흘러내렸다.//

사각사각 세월에 긁힌 묵형의 흔적,/나이테 그 아스라한 동그라미 안으로/

나무는 꽁꽁 세월을 묶어 가뒀고,/갇힌 세월은 끝내 굵은 옹이로 박혔다.//

나무는 그렇게 세월을 견뎠다,/오직 한자리에 붙박인 뿌리로/

나무는 그렇게 세월을 디뎌 견뎠다.

< 나무 > 전문

 

왠지 우릴 길러내신 우리네 아버지의 비애가 느껴지며, 오늘 그 길을 답습하여 가고 있는 나의 모습이 느껴지기도 하는 시다. 아울러 나무처럼 한자리에 붙박여서 묵묵히 세월을 이겨내야겠구나 하는 다짐도 해본다.

 

왜 이제야 시집을 출간하였는지 아쉬움과 함께 앞으로도 많은 시로 찾아와 줄 것을 기대하며 응원한다. 시인이 외치듯이 이제는 그동안 시인을 갉아먹은 세월을 향해 반격하며 세월을 발라 먹게 되길 말이다. 아울러 우릴 갉아먹는 세월을 향한 우리의 반격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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