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 강아지 - 어른을 위한 동시
이순영 지음, 최지혜 옮김, 조용현 그림 / 가문비(어린이가문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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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잔혹동시’라 하여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시집이 다시 새롭게 개정판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논란의 중심에 있던 동시는 삭제하고 몇몇 동시를 더 추가하여 개정판으로 나온 겁니다.

 

과연 어떤 시들이었기에 논란이 되었던 걸까(물론 가장 논란이 된 시는 제목만 실리고 내용은 빠진 백지로 실려 있지만 말입니다.) 궁금한 마음으로 책장을 펼치며, 꼬마 시인의 시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초등학생이지만, 어린이의 시라고 느끼지 않을 그런 시들이 가득하기에 먼저 놀랐습니다. 역시 천재 시인이란 타이틀을 붙이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시집을 읽고 동시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동시와 어린이 시는 구분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어린이들이 쓰는 시들을 동시라고 말하지만 엄격하게 동시가 아닌 어린이 시(또는 아동시)로 구분해야 한다는 거죠. 동시란 어린이가 쓰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 동심으로 돌아가 쓴 시라는 겁니다. 물론, 꼭 어른들이 아니어도 되리라 여겨집니다. 이런 정의에서 동시와 어린이시를 구분하는 이유는 동심은 가득하지만, 서툰 표현들로 인해 어린이시라고 구분하리라 여겨집니다. 한마디로 시로서의 격(?)이 떨어진다고 보기 때문이겠죠. 그렇다면, 비록 나이가 어린 어린이의 시라 할지라도 시의 격이 있다면 동시라 말할 수 있겠죠. 그런 입장에서 본다면, 이 시집 『솔로 강아지』는 동시라 말하기에 충분하리라 여겨지네요.

 

단, 동심이란 부분이 문제입니다. 동심을 무엇으로 정의 내려야 할까요? 동심이란 말 그대로 어린이의 마음입니다. 여기 어린이의 마음은 그렇다면 오늘날의 어린이들이 품고 있는 마음은 모두 어린이의 마음이라고 해야 할 까요? 이렇게 본다면, 이 시집 『솔로 강아지』는 분명 동시가 맞습니다.

 

하지만, ‘동심’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습니다.

 

<어린아이의 마음. 또는 어린이와 같은 순진한 마음.>

 

다시 말해, 단순히 어린아이들이 품고 있는 마음만이 동심은 아니라는 겁니다. 순진한 마음, 천진난만하고, 순수하며, 때 묻지 않은 마음을 동심이라고 정의하고 있다는 거죠. 이렇게 접근할 때, 『솔로 강아지』에 나오는 수많은 작품들은 어쩌면 동심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독자들의 불편함이 출발하고 있다고 여겨지네요. 물론, 논란의 대상이 되어 그 내용을 삭제한 시 뿐 아니라, 그 외의 상당 시 역시 위에서 살펴본 사전적 의미의 ‘동심’과는 거리감이 있어 보이거든요.

 

물론, 이렇게 동심을 파괴하게 만든 사회구조적인 문제에 핵심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시를 동시라고 정의하고 있기에 많은 독자들에게 불편함을 주었던 것은 아닐까요? 만약 천재 꼬마 시인의 시집이라고 하였다면 어땠을까요? 그랬다면 어쩌면 요즘 학생의 입장으로 느끼는 문제들에 대한 시적 접근이라고 칭찬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비록 그 안에 암울함이 있고, 때론 끔찍한 표현이 있다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이 문학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허용이 될 수도 있을 테니 말입니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아쉬움이 남는 부분입니다. <어른을 위한 동시>라는 타이틀보다는 작품성 있는 ‘시’에 초점을 맞췄더라면 하는 아쉬움 말입니다. 분명 시에 논란의 여지가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논란이 된다는 것은 원래의 시집을 지지하는 이들도 많다는 의미거든요. 그 시집을 그대로 살려내며, 독자들을 만날 수 있는 방안 모색이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이 드네요(물론, 출판사의 고민이 얼마나 컸을지는 상상이 가지만 말입니다.).

 

또 하나 언급하고 싶은 것은 나에게 불편하다고 해서 그것이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더 위험한 접근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런 접근이야말로 현대에서 여전히 한 가지 소리만을 강요하며 자신들만의 바벨탑을 쌓으려는 움직임이니까 말입니다(요즈음 국정화 시도처럼 말입니다.). 비록 나에게 불편함이 있다 할지라도 그 불편함 이면에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시인의 시적 통찰력과 시인이 발견한 진실이 담겨 있음도 봐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아울러 아이들이 동심이 파괴되었다면, 아이들의 동심을 파괴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어른들이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지, 책을 절판시켜야 한다고 외치는 것은 조금 아니지 싶습니다.

 

아울러 이러한 논란으로 인해 혹여 시인의 마음에 치유할 수 없는 상처가 되지 않길 바랍니다. 오히려 이런 논란이 시인을 더욱 튼튼하고 강하게 만드는 유익이 되길 소망해 봅니다.

 

참, 세상에는 어둡고 힘겨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밝고, 아름답고, 따스한 현실도 존재하죠. 다음번에는 조금 더 밝은 동시들을 독자들에게 선물해 준다면 어떨까 하는 개인적인 바람을 품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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