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 시집보내기 문학동네 동시집 37
류선열 지음, 김효은 그림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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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 시집보내기』란 재미난 제목의 동시집을 만났습니다. 저자인 류선열 시인의 소개를 살펴보니, 1980년대에 활동하시다 37세의 젊은 나이로 타계하신 분이라고 합니다. 70여 편의 동시와 1편의 동화를 그 흔적으로 남겨 놓고 떠나셨기에 더욱 안타깝고 아쉬움이 가득하게 남게 되네요.

 

먼저, 시인의 동시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기 전, <시인의 말> 가운데 동심을 잃은 오늘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글귀가 있네요.

 

장난감 수갑을 보란 듯이 내걸고 파는 문방구 주인아줌마와 희한한 비디오를 보여 주는 만화 가게 아저씨를 위해 동심을 일으키자.

그리고 이 세상에 아이들의 마음 밭을 가꾸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믿는 어른들과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사랑할 줄 모르는 나 자신을 위해 글을 쓰자.

 

시인이 어떤 마음으로 동시들을 적어나갔을지 알게 해주는 구절이네요. 아이들의 마음 밭을 가꾸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시인, 그 마음 밭을 가꿈에 동시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는데, 시인의 활동 기간이 너무 짧음이 다시 한 번 아쉬움으로 남게 되네요.

 

시인의 동시들을 살펴보며, 무엇보다 두드러진 시의 형식면에 있어서의 특징이 있네요. 그건 많은 동시들이 운문시와 산문시가 혼합된 형태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랍니다. 또한 그 내용들은 목가적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동시들도 많고, 무엇보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동시들, 특히 자연을 벗 삼아 뛰놀던 동심을 느끼게 하는 시들이 많답니다. 참새 집에 손을 넣어 참새를 살며시 만져보고 놓아주던 일, 잠자리 꽁무니에 짚을 꽂아 날려 보내며 놀던 일, 개구리 엉덩이에 바람을 넣고 놀던 일, 개울에서 멱을 감다 귀에 물이 들어가면 따뜻한 조약돌을 귀에 대 물을 빼던 일 등을 시인은 잘 묘사하고 있답니다. 이런 동시들을 읽으며, ‘그래, 나도 이렇게 놀던 때가 있었는데.’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떠오르게 되네요. 그러니, 동시를 통해, 자연스레 동심의 시대,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하게 된답니다. 물론, 아이들에게는 부모님 세대들이 어떻게 놀았는지를 살며시 엿볼 수도 있겠고요.

 

어린 시절 소풍가기 전날에 잠을 잘 못 이루었지요. 설레는 마음에 뒤척이다 늦게 잠들었는데도, 어느 날보다 일찍 눈이 떠지던 소풍날. 소풍날에 빠질 수 없는 게 보물찾기였죠. 그런데, 시인도 저처럼 보물찾기에 재능이 없었나 봐요. 저도 보물찾기를 하면 잘 찾지 못했거든요. 친구들은 그토록 잘 찾던 보물을 난 왜 그리 못 찾았던지. 시인은 그런 보물찾기에 대해 이렇게 노래하네요.

 

내게 보물은 그저 ‘찾기 전의 설렘’ 그것뿐인가 봐요.

< 보물찾기 > 일부

 

맞아요. 보물을 찾지 못해도 즐거웠던 건, 언제나 이 설렘이 가득했기 때문이죠. 이 동시집 『잠자리 시집보내기』에는 바로 이런 설렘으로 가득합니다. 옛 추억에 대한 설렘 말입니다. 또한 풋풋하던 이성을 향한 설렘도 엿보이고요. 꿈속에서 결혼식을 하게 되는데, 자기 옆에 있는 신부의 얼굴을 보니, 이빨 빠진 짝꿍이네요. 또한 갓 전학 온 여자아이에게 남자답게 보여야 하는데, 진눈깨비 내리는 고갯길을 걸어 하교하는데, 갑자기 날아오른 새 때문에 깜짝 놀라는 귀여운 모습, 그리고 콩닥거리는 사내아이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동시도 있네요. 이런 내용이에요.

 

둘이서 막 내리막길로 내려설 때여요. 발밑에서 수리부엉이 한 마리가 갑자기 “푸드덕”하고 우리를 놀래 주지 않겠어요. 얼마나 간이 오그라들던지, 우리는 그만 와락 안고 말아요. 왜 이렇게 맞닿은 가슴은 콩닥거릴까요? 구부러진 길 저쪽으로 마중 나오는 형의 호롱불빛이 아른거려요.

< 진눈깨비 > 일부

 

공부보다는 동심의 세계를 동경하는 시인의 노래들도 있는데, 그 가운데 이렇게 예쁘고 따뜻하면서도 유쾌하고 재미난 동시가 있네요.

 

시작이 나쁘면 끝까지 나쁜가 봐요.

어제는 선생님이 늦으셨고

오늘은 내가 늦었는데

말은 안 했지만 길에서 우는 아이를 달래다가 늦었는데

회초리는 선생님 것이고

매 맞은 빨간 자국은 내 것이었어요.

아무래도 생각이란 건 안 하는 쪽이 편해요.

< 꼴찌 만세 > 일부

 

선생님, 나빠요~^^. 길에서 우는 아이 달래다가 지각한 이 아이의 마음, 그 온도만은 단연코 일등이네요.

 

시인이 선물하는 동심의 세상, 동시를 읽고 묵상하는 시간은 너무나도 따뜻하고, 순수한 동시들을 만나 행복한 시간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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