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생 자르기 Fired K-픽션 13
장강명 지음, 테레사 김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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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한참 ‘갑질’논란으로 진통을 겪어왔다. 물론, 이러한 갑질은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힘이 있으면 비행기도 회항시키고, 백화점의 직원들도 자신의 앞에 무릎 꿇릴 수 있는 세상에서 우린 살아간다. 그런 우리들에게 『알바생 자르기』란 제목은 상당히 불순하며, 도발적인 제목처럼 여겨진다.

 

과연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펼치게 된다. 그런데, 사뭇 기대했던 내용과 다르게 이야기는 전개된다. 알바생은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라기보다는 왠지 알바생이 또 하나의 갑이 되어 횡포를 부리는 것은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심지어 읽는 내내 이런 못된 알바생을 어떻게 하면 잘 자를 수 있을까 생각하게 하기도 한다.

 

작은 회사의 중간관리자인 은영은 알바생 혜미로 인해 마음고생(?)이 많다. 일도 열심히 하지 않으며, 싹싹하기보단 찬바람이 쌩쌩 부는 알바생이 과연 부하인지 상전인지 구분이 안 된다. 공과사의 구분도 없이 업무시간에 한의원에 다니면서도 그 당당함은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알 수 없다. 비정규직으로서 누릴 수 있는 혜택들을 모두 이야기하며 하나하나 다 받아내는 그 당돌한 모습에 은영은 혀를 내두르게 된다. 이런 모습에 은영이 빨리 알바생 자르기에 성공해야 할 텐데 하는 심정이 들기도 한다.

 

결국 알바생으로 인해 마음 고생하였던 중간관리인 은영은 알바생 혜미를 자르는데 성공하게 된다. 그럼 홀가분한 마음으로 책장을 덮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불편함과 미안함, 안타까움, 부끄러움이 마음에 가득하다. 글은 이렇게 끝나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여자아이는 가방에 손을 넣어 봉투를 확인했다. 봉투를 땅에 떨어뜨리고 돈을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겁이 났다.(이렇게 주지 말고 계좌로 부쳐줬으면 좋을 텐데.) 건물을 나서자마자 은행을 찾아갈 참이었다. 학자금 대출을 제때 갚지 못해 독촉을 받고 있었다. 여전히 발목이 아팠다. 인대 수술을 받느라 퇴직금을 다 썼지만 별로 나아진 게 없는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고,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78쪽)

 

여태 독자들은 작가에게 속았다. 작가는 알바생의 부당한 모습들을 드러내며 자르기를 학수고대하는 은영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그렇기에 독자 역시 은영에게 동조하게 된다. 하지만, 마지막은 이렇게 반드시 잘라내야만 하는 나쁜 알바생이 알고 보니 그 안에 남들에게 밝힐 수 없는, 그리고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수많은 아픔과 한숨, 삶의 무게가 가득한 약자 중에 약자에 불과하다. 그토록 맹랑하게 여겨질 만큼 자신의 권리를 찾아가며 손에 움켜쥐려한 이유 역시 혜미에게는 그만큼 절박하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것들을 쟁취하였음에도 혜미는 여전히 빈손 인생이며, 곁에는 아무도 없는 외로운 인생, 미래가 불안한 인생에 불과하다.

 

이런 결말을 통해, 작가는 우리로 하여금, 나의 입장에서 쉽게 판단하고 몰아세우려는 대상 역시 그 안에 아픔과 설움을 간직한 인생이며, 그 아픔의 무게만큼 더욱 당돌해질 수밖에 없는 약자 중에 약자임을 생각하게 한다. 약자의 당돌함은 생존하기 위한 절박한 선택일 뿐이다. 짧은 글이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며, 타인을 향한 나의 자세를 돌아보게 하는 좋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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