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부자 16인의 이야기 - 조선의 화식(貨殖)열전
이수광 지음 / 스타리치북스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한 때, “여러분, 부~자 되세요~”란 카피의 CF가 인기 있던 때가 있었다. 수많은 패러디를 낳고 유행어가 되기까지 한 이 축복(?)의 문장. 물론 한 쪽에서는 이 문구가 물질만능주의를 조장한다는 비난도 없지 않았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솔직히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다 있지 않을까?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세상엔 두 부류의 사람만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부자인 사람과 부자가 되길 원하는 가난한 사람 말이다(물론, 이는 지극히 단순화한 것이며, 부자가 됨에 관심이 없는 분들도 많을 테지만).

 

그럼, 부자는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 이 책, 『조선 부자 16인의 이야기』에서 저자는 말한다. 부자는 3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축적, 증식, 그리고 분배가 그것이다. 우린 대부분 축적과 증식만을 부자의 요소로 생각하지만, 분배라는 요소야말로 부의 완성을 가져온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분배가 되지 않고, 그저 축적과 증식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은 참된 부자가 아닌, 전충(錢蟲) 즉 돈벌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분배야 말로 부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관점으로 조선시대의 부자들 16명(개인인 경우가 대다수지만, 가문을 드는 경우도 있다)을 하나하나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역사가 아닌, 하나의 단편소설처럼 읽혀지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 책은 팩션이기 때문이다. 역사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주는 것만이 아니라,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된 부분들이 있다는 게다. 그러니 조선 시대의 부자들에 대한 역사 이야기를 사실에 근거하여 더욱 흥미롭고 풍성하게 접할 수 있는 책이다.

 

이들 16명의 이야기들이 모두 바람직한 분배의 예가 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어느 경우는 왠지 바람직한 분배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경우도 없지 않지만, 그런 경우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부를 이루어가기 위해 보인 삶의 자세들을 살펴본다면, 이 책의 작업은 분명 의미 있는 작업이 되리라 싶다.

 

어떤 분들은 철저한 근검절약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상도의 길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기도 한다. 또한 악착 같이 일하고 절약하는 모습, 정보가 돈이 됨을 알고 들려오는 정보에 귀를 기울이고 부를 쌓아가는 모습, 신용과 정직이 커다란 부로 되돌아오는 모습, 땅이 정직함을 믿고 그 땅에 땀 흘리기를 즐거워하는 모습 등 다양한 모습들을 살펴볼 수 있다. 물론, 어느 경우는 다소 엽기적인 모습으로 부를 쌓는 모습도 발견하게 된다. 이런 다양한 모습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재미도 있다.

 

그럼에도 무엇보다 의미 있는 건, 이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멋진 분배를 통해, 부의 완성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자신들이 쌓은 부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내놓는 모습. 국가를 위해, 독립을 위해 자신의 부를 내놓는 모습. 자신의 부의 힘을 가지고 부정을 억제하는 모습 등 참 멋스러운 모습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대단히 세속적인 재화가 더럽기보다는 오히려 얼마나 아름답고 선하게 사용될 수 있는 지를 깨닫게 한다.

 

이 책에 나오는 많은 분들이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지만, 잘 알려진 경주 최부자 가문의 이야기는 아무리 이야기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경주 최부자 가문에는 이런 가훈이 있다고 한다.

 

-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하지 마라

- 재산을 만 석 이상 모으지 마라

- 흉년에는 재산을 늘리지 마라

-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 사방 백 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 최씨가의 며느리는 3년 동안 무명옷을 입게 하라.

 

이런 멋진 가훈을 정하고, 그것을 그대로 실천하며 살던 그들이기에 그 부가 아름답게 유지된 것이 아닐까? 이들은 그 가르침 그대로 흉년이 들자, 쌀을 빌려간 사람들의 문서를 태워버렸다고 하며, 더 나아가 흉년으로 굶주리는 사람들을 구제함에 힘썼다고 한다. 소작으로 받은 쌀의 1/3은 반드시 가난한 이웃을 구제하는 데 사용하였다는 경주 최부자 가문. 얼마나 멋진 가문인가!

 

이 가문이 탄생하게 된 데에는 어느 스님이 툭 던진 이 말이 큰 깨달음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재물은 거름이다. 거름은 나누면 농작물을 잘 자라게 하지만 쌓아두면 악취가 풍긴다.” (300쪽)

 

그렇다. 오늘 부자들의 갑(甲)질이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되는 이유는 그저 자신들을 위해서만 쌓아두고, 그 힘을 자신들만을 위해 사용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 그런 갑질에서는 악취가 날 수밖에. 하지만, 진정한 갑질은 나눔에 있을 것이다. 사회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이웃의 삶을 더욱 잘 자라게 만들어 세상을 향기롭게 하는 거름으로서의 나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갑의 모습이 아닐까? 이런 멋진 갑질이 세상에 가득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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