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크 픽션
배상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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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민 작가의 장편소설 『페이크 픽션』을 읽고 느낀 건, 첫째, 재미있다는 점이다. 현재와 과거의 기억을 오가며 전개되는 소설은 한번 읽기 시작하면, 손을 떼기 쉽지 않을 만큼 흡입력이 강한 소설이다. 하지만 이렇게 재미나게 전개되는 소설의 내용은 무겁다. 소설은 결코 가볍지 않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 소설이 다루는 주된 메시지는 용산재개발 지역의 참사를 다루고 있다. 그저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나 사건이 아닌, 그 참사 안에 희생되고, 삶의 터전을 빼앗긴 채 내몰릴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다는 메시지를 작가는 우리에게 들려준다. 즉, 작가는 ‘사람’에 관심을 기울인다. 삼류 영화감독인 황감독의 시선을 통해서. 황감독의 시선 변화처럼, 독자인 우리들의 시선 역시 변하길 바라는 마음을 품고.

 

황감독은 삼류 감독이다. 아니, 아직 제대로 입봉도 하지 못한 그는 지금은 그저 동거녀(동거녀 역시 삼류 여배우다)와 함께 만화카페를 운영하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가게를 비워져야 할 위기에 처한. 그런 그들의 만화카페 입간판 뒤에 어느 날 포스트잇 한 장이 붙게 된다.

 

“왜 가만히 있지요? 벌이 없으면 죄도 없습니다. 세상은 변한 게 없어요.”(164쪽)

 

이 글씨는 황감독에는 눈에 익은 글씨체, 바로 그토록 찾던 삼룡의 글씨체였던 것. 삼룡은 바로 황감독의 데뷔작이 될 뻔 했던 영화의 주인공이었다. 이 소설은 바로 황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황감독은 동거하던 여배우 성숙이 2천만 원을 사채업자로부터 빌리는 바람에 이 돈을 갚지 못하면 사채업자들로부터 콩팥을 떼어내야만 할 위기에 처한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사채업자는 황당한 제의를 한다. 2천 4백만 원으로 자신의 무용담을 근거로 한 액션영화를 만들라는 것. 그나마 2천 4백만 원은 황감독이 빌린 돈과 이자였다. 그러니, 황감독은 돈 한 푼 없이 액션영화를 만들지 못하면, 콩팥을 떼이고 버려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에 황감독은 돈을 들이지 않고 영화를 찍을 방법을 찾아낸다. 최신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촬영하고, 엄청난 무술 실력을 가진 주연 배우를 캐스팅하여 실제 싸움판에 투입하여 그 장면을 찍겠다는 것. 문제는 이런 실제 싸움판에서 자신의 목숨을 건사할 엄청난 무공을 가진 주인공을 캐스팅하는 것. 우여곡절 끝에 황감독은 냉면집 배달원 삼룡이 엄청난 무공을 가진 것을 알게 되고, 순박한 청년 삼룡을 영화배우로 캐스팅하여 실제 싸움판에 투입한다. 이에 삼룡은 영화를 실전처럼 찍는다는 말에 속아 건달들 간의 이권 싸움판에 투입되고, 철거촌 현장에 투입되어 철거용역으로 철거민들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는 자가 된다.

 

이런 가운데, 삼룡은 자신이 하는 일이 옳지 않음을 알고 갈등하게 되고, 결국 철거민들 편에 서게 되는데. 과연 삼룡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황 감독은 콩팥을 무사히 지켜낼 수 있을까?

 

앞에서도 이야기 한 것처럼 이 소설, 『페이크 픽션』은 재미나다. 하지만, 단지 재미만을 전해주지는 않는다. 그 안에 철거민들을 향한 안타까움, 정의를 향한 꿈틀거림을 느끼게 하는 소설이다. 다시 말해, 이 소설은 어떤 의미에서는 불편한 소설이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우린 마땅히 감수해야 할뿐더러, 불편함 이면에 있는 불의를 향해 외면치 말고,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져다 준 재난, 어쩌면 자연이 가져다 준 것보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져다준 재난이 더 위험한 지도 모르죠. 자연이 준 재난은 인간을 뭉치게 하지만 인간이 준 재난은 인간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으니까요.(360쪽)

 

소설 속에서 철거민들 편에서 투쟁하던 여인 재인이 황감독에게 하던 말이다.

 

세상은 참 변하지 않았다. 지금의 나나, 외국인 노동자들이나 뭐가 그리 다를까. 그리고 5년 전 그 날. 철거를 앞둔 5층 건물이 불타오를 때 나와 함께 있었던 그들도... 법은 언제나 내쫓으려는 자들의 편에 서 있었다.

 

이는 만화카페 가게를 비워줘야 할 위기에 처한 황감독의 독백이다. 그렇다. 세상의 법은 언제나 내쫓으려는 자들의 편에 서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세상을 위해 작가는 존재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많은 독자들이 이 재미난 소설을 읽으며, 재미와 의미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얻을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세상의 법이 내쫓으려는 힘 있는 자들의 편에 서지 않고, 내쫓기는 약한 이들의 편에 법이 서게 될 날을 함께 꿈꿀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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