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 소녀
박정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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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윤 작가의 작품을 처음 만났다. 『목공 소녀』라는 작품집을 통해. 이 소설집은 아홉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모두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소녀’이면서도 통상적인 ‘소녀’란 이미지를 탈피한 소녀들이다. 이들을 통해 전해주는 이야기들은 사실, 대단히 어둡고, 때론 섬뜩하며, 기괴하기도 하다. 솔직히 이들이 만들어 가는 이야기들은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들이다.

 

이렇게 어두운 이유는 이야기들 밑바탕에 죽음, 피, 성폭력, 부모로부터의 버림받음 등과 같은 원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등장하는 소녀들의 면면도 어둡다. 초등학교 동창에게 약물을 파는 소녀. 수년 동안 16살에 머물며 학생의 자리에 돌아가길 원하지만 16세 때의 상처를 결국 치유하지 못하는 소녀. 죽음과 무덤에 묻힘을 놀이로 하는 소녀. 사기와 불륜으로 감옥에 간 엄마에게 죽어버리라 저주한 소녀. 등이 붙은 상태로 엄마의 자궁 안에 있다가 태어나며 분리되어 태어났지만, 서로의 등이 맞닿을 때 상대의 생각을 읽어낼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진 소녀. 복수를 꿈꾸는 소녀 등. 모두 한 결 같이 평범함을 거부하는 소녀들이다.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한, 단편 「목공 소녀」의 주인공 진이 자신을 16세 학생 아닌 학생으로 영원히 머물게 한 장본인 상어 같은 외삼촌을 향한 심리상태를 보여주는 부분을 보면,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소녀들이 어떤 모습일지 짐작하기 쉬울게다.

 

진이 년 어디 있어? 상어의 발자국 소리가 안방으로 다가왔다. 쿵쿵쿵. 상어가 나선형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무가 삐걱거렸고 거칠게 내뱉는 상어의 숨소리가 들렸다. 내 몸에 소름이 돋았다. 손끝과 발끝이 뻣뻣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전기톱의 스위치를 켰다. 덜덜 떨리는 톱이 이불자락을 잘라냈다. 튀어나온 목화솜이 흩날렸다.(114쪽)

 

이처럼 아홉 소녀들이 만들어 가는 이야기들은 암울하고, 섬뜩하며, 어두운 결말들로 이어지곤 한다. 작가는 이런 암울한 이야기들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아무리 한 쪽에서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행복을 부르짖는다 할지라도 여전히 그러한 외침이 공허한 울림이 될 수밖에 없는 이들, 여전히 불행의 늪에서 빠져나올 가능성이 제로인 이들이 다른 한 쪽에는 존재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꿈 많은 ‘소녀’여야 할 그 단어, 상큼하고 싱그러운 단어인 ‘소녀’. 하지만, 그런 소녀들이 꿈, 희망, 행복, 사랑 등 긍정적 단어로부터 괴리된 채 더욱더 어둡고 암울한 세상으로 내몰리며 살아가야만 하는 ‘소녀’ 아닌 ‘소녀’들이 여전히 우리 곁에는 수없이 존재함을 우리에게 전하려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들을 소녀의 자리에서 내모는 이들은 누구란 말인가? 자신의 성적 욕망을 채우려는 자들. 부모의 도의를 행하지 못하는 자들. 자녀를 지켜주지 못한 자들. 시기심에 의해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내는 자들. 도움을 외면하는 자들. 어쩌면, 이들은 그리 괴기스럽지 않은 자들이다. 아니, 어쩌면 내 곁에 있는 자들일 수도 있겠고, 어쩌면 내가 그 자리에 설 수도 있겠다. 어쩌면 작가는 이것을 우리에게 전하려는 것이 아닐까? 당신이 소녀들을 소녀의 자리에서 내모는 자일 수 있다고.

 

아무튼 모를 일이다. 괴기스럽고, 섬뜩하며, 암울하고, 어두운 소설들이다. 하지만, 그저 어둡다고 치부하기엔 뭔가 그 안에 묵직한 속삭거림이 느껴지는 소설들이다. 다시 한 번 소설을 찬찬히 곱씹으며 읽어볼 필요가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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