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당신이 다른 곳에 존재한다면
티에리 코엔 지음, 임호경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티에리 코엔의 소설, 『만일 당신이 다른 곳에 존재한다면』은 한 죽음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노암은 피곤해 하는 엄마를 졸라 공원에 가 그네를 타기 위해 길을 건너다 그만 자신을 뒤따르던 엄마가 차에 치어 숨지게 된다. 이 사건은 노암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다.

 

“꼬마가 떼를 써요. 공원에 가서 그네를 타자고 계속해서 졸라요. 엄마가 ‘다음에 하자’라며 꼬마를 달래요. 엄마는 꼬마를 ‘몽꾀르(내 심장)’라고 불러요. 왜 그렇게 부르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요. ... 사실 누군가를 ‘심장’이라고 부르는 건 말도 안 돼요. ... 왜냐면 심장은 무언가를 살게 해주는 거잖아요.”(10쪽)

 

심리상담을 하며 어린 노암이 던진 말이다. 결국 엄마를 살게 해주는 존재가 아닌, 죽인 자신이 어찌 엄마의 ‘심장’이 될 수 있겠느냐는 이 말 안에 노암의 죄책감과 노암이 평생 짊어져야 할 아픔의 무게가 느껴진다.

 

노암은 오랜 시절 심리상담을 받게 되고, 결국 일상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건 표면적인 모습일 뿐. 노암은 무엇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무의식 가운데 품고 살아간다. 그런 노암은 어느 날 사랑하는 어린 조카(3살) 안나에게 이런 말을 듣게 된다.

 

“넌 다섯 사람과 함께 같은 날 심장으로 죽을 것이다.”

 

누군가 조카의 입술을 빌어 말하는 것 같은 이 말로 인해, 노암의 가장 큰 두려움, 죽음은 노암을 힘겹게 하고, 노암의 공항장애가 시작된다. 그러던 차, 이 음성이야말로 ‘순수한 이들의 예언’임을 알게 되고, 어린 시절 자신의 상담자였던 로랑스 박사를 통해, 신비주의 심리상담을 하는 리네트를 소개받게 되고, 리네트는 노암에게 예루살렘에 있는 예언하는 아이를 찾게 한다.

 

과연, 노암 앞에는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리고 안나의 예언의 의미는 무엇일까?

 

처음 접한 작가인 키에리 코엔, 그의 소설을 읽어가는 가운데 금세 소설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스토리 자체가 흥미진진할뿐더러, 신비한 영역, 우리가 알지 못할 또 다른 차원의 어떤 힘을 느끼게 하는 재미도 있다. 게다가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에 대한 작가의 접근도 흥미롭다.

 

엄마의 죽음으로 인해 해체된 가정과 엉망이 된 삶이 이제 소설 말미에서는 안정을 찾아 가게 되는데, 그 동인은 무엇일까? 영원한 사랑과의 만남. 사라의 예언을 추적하는 가운데 얻게 되는 영혼의 깊은 곳에서의 울림. 그리고 또 다른 죄책감을 안고 평생을 살아온 사람의 고백과 용서를 통해 얻게 된다. 하지만, 작가는 마지막까지 과연 그것뿐일까 암시한다.

 

우린 누구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마련이다. 물론, 이러한 두려움에 종교가 가장 큰 힘을 실어주고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아울러, 우리가 죽음에 얽매이기보다는 어떤 삶의 자세로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소설 속에서 작가가 던져주는 질문이 이에 대한 답이 될 수 있겠다.

 

나는 과연 의미 있는 삶을 살아왔는가?

나의 가치들을 포기해 오지 않았는가?

나는 정말로 내 가족의 행복에 관심을 가졌던가?

이 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투쟁에 얼마만큼이나 참여했던가?(209쪽)

 

내 죽음의 때가 언제일지에 매달리기보다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이런 질문과 함께 살아감이 필요하지 않을까?

 

역시 도서출판 밝은세상의 소설들은 한 결 같이 재미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평소 도서출판 밝은세상의 책답지 않게 책 안에 오타가 많다는 점이었다. 10여 곳이 넘는 오타들(조사들을 잘못 번역 내지 적은 경우가 많았고, 단순한 오타들도 많았다)이 좋은 작품을 방해하는 요소로 남는 것 같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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