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시선 : 카페 프란스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9
정지용 지음 / 아티초크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 대는~~” 으로 시작하는 <향수>란 노래를 모르는 분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대중가요 가수와 성악가가 함께 부름으로 당시 화제가 되기도 했던, 이제는 국민가요가 되어버린 노래. 바로 이 노래, 그 시를 쓴 시인 정지용 시인 역시, 아니 어쩌면 대중가요보다 더 사랑받는 시인이 아닐까 싶다.

 

시 속에 등장하는 마을을 휘돌아 나가는 실개천을 보기 위해 찾아가는 충북 옥천은 문학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이미 성지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물론, 운치 있는 실개천이라기엔 왠지 손을 댄 듯하고 조금은 넓어 보이던 개천. 게다가 말라버린 개천이기에 실망한 기억이 나지만). 바로 그 유명한 정지용 시인의 시집 『카페 프란스』가 출판사 아티초크에서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9번째 책으로 출간되어 반가운 마음에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은 표지가 3가지로 구성되어 있어, 마음이 이끄는 데로 골라보는 재미도 있다. 복사꽃이 흐드러진 표지, 과연 이 안에는 어떤 시어들이 흐드러져 펴 있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작은 시집을 펼쳐든다.

 

솔직히 언어가 예스럽기에 시에 몰입하기 어려움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아니, 이는 어쩌면 말라버린 내 감성 탓이리라. 서정시인으로 불리는 정지용. 역시 그 타이틀에 맞게 너무나도 익숙한 시 <향수>가 가장 마음을 끈다. 특히, 다섯 차례 반복되는 후렴구인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모든 이들의 감성을 뭉클하게 하지 않을까? 고향이 언제나 그리운 이유는 무얼까? 이미 그곳엔 날 반겨줄 이 하나 없을지라도 여전히 고향이 그립고, 시인의 고백처럼 꿈엔들 잊히지 않아, 여전히 꿈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소, 고향. 그곳은 다름 아닌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인 철없던 유년의 추억이 가득한 곳이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다면, 실개천 돌아나가는 그곳 고향을 꿈엔들 잊지 못하는 바야 그러려니 할 텐데, 유독 시인의 시 가운데는 바다에 대한 노래가 많은 이유는 뭘까? 바다와 가장 먼 충북 옥천이 고향인 시인인데 말이다. 어쩌면 바다로부터 유리된 곳에서 자랐기에 바다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그의 시에 반영되는 것일까? 물론,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많은 바다에 대한 시 가운데 <바다 3>이 마음에 와 닿는다.

 

외로운 마음이 / 한종일 두고 //

바다를 불러 - //

바다 위로 / 밤이 / 걸어온다.

<바다 3> 전문

 

시인은 얼마나 외로웠기에 한종일 바다를 불렀던 걸까? 어쩌면 시인은 지금 바닷가에서 외로움을 토해내고 있던 것은 아닐까? 그 외로움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다 위로 밤이 걸어오는 것조차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언젠가 서해안의 물 빠진 바닷가를 걸었던 기억이 난다. 밀물 때가 된지도 모르고 바닷가를 거닐었는데, 밀물에 물이 들어오는 속도가 성인 남성의 발걸음 속도와 맞먹었다. 파도는 없지만, 소리 없이 빠르게 스며들듯 쫓아오던 밤바다 무섭게 느껴지던 그 때가 이 구절과 함께 떠올랐다. “바다 위로 밤이 걸어온다.”나에겐 이 구절 안에 두려움과 외로움이 겹쳐진다.

 

<해바라기 씨>란 시도 재미나다. 어찌 생각하면 동심을 느껴져 살포시 미소 짓다, 웬걸 왠지 노골적이고 외설적이기까지 하여 살포시 얼굴을 붉혀본다. 여러분은 어느 쪽인지 한 번 읽어보시라. 아마도 내 안의 마음이 느낌을 다르게 하지 않을까?^^

 

해바라기 씨를 심자. / 담모퉁이 참새 눈 숨기고 / 해바라기 씨를 심자. //

누나가 손으로 다지고 나면 / 바둑이가 앞발로 다지고 / 괭이가 꼬리로 다진다. //

우리가 눈감고 한밤 자고 나면 / 이슬이 나려와 같이 자고 가고, //

우리가 이웃에 간 동안에 / 햇빛이 입맞추고 가고, //

해바라기는 첫 시약시인데 / 사흘이 지나도 부끄러워 / 고개를 아니 든다. //

가만히 엿보러 왔다가 / 소리를 깩! 지르고 간 놈이 - /

오오, 사철나무 잎에 숨은 / 청개구리 고놈이다.

<해바라기 씨> 전문

 

올 가을엔 시집 『카페 프란스』를 들고 옥천 정지용문학관을 찾아 정지용 시인의 마네킹 옆에 앉아 시집을 펼쳐들고 시 한 편 묵상한다면 시인이 당시 시인의 마음을 살며시 속삭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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