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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느 별에서
정호승 지음 / 열림원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우리 모두는 각자의 글쓰기 스타일이 있게 마련이다. 어떤 분들의 글은 어려운 말들을 잔뜩 늘어놓는 가운데 삶의 통찰력을 느끼게 하는 글이 있는가 하면, 어떤 분들은 참 편안하게 읽히는 가운데 그 안에 깊은 통찰력이 감춰져 있는 경우도 있다. 물론 괜히 어렵기만 한 글도 있을 것이고, 쉽기만 하면서 별 내용 없는 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두 경우는 빼고 좋은 내용을 담고 있는데, 조금 어렵게 읽히는 글과 쉽게 읽히는 경우를 생각해본다면, 당연히 쉬우면서도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글이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
별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정호승 시인의 글이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 정호승 시인의 글은 쉽고 편안하면서도 그 안에 감동이 있고, 삶을 향한 깊은 통찰력이 담겨 있다. 벌써 3번째 개정증보판으로 새롭게 출간된 이 책은 꽤나 파란만장한 히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첫눈 오는 날 만나자(1996)』⇨『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2001)』⇨『위안(2003)』⇨『우리가 어느 별에서(2015)』 책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처음 글들에 조금씩 더 많은 살이 붙음으로, 그 풍만한 자태를 자랑하는 에세이 책이 된 게다. 이러한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진 책이지만, 그 내용은 잔잔한 감동을 주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대체로 짧은 글들로 이루어진 그의 산문들은 무엇보다 잔잔하다. 때론 일상의 삶 속에서 일어난 일들을 통한 사색을 담고 있기도 하고, 때론 그리운 지인들을 생각하며 글을 쓰기도 한다. 때론 본인의 부끄러운 치부(?)를 드러내며 솔직한 자기반성을 담아내기도 하며, 때론 사랑, 고통, 죽음 등에 대한 시인의 통찰력을 풀어내기도 한다. 때론 자신이 읽은 책들에 대한 내용에서 생각을 더 발전시킨 이야기들도 있다. 이러한 내용들이 때론 우습기도 하고, 때론 뭉클하기도 하며, 때론 우리의 삶을 향한 꾸짖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생각나는 글들이 많지만, 먼저 우스운 글로 「역반하장(?)」이란 글이 있다. 자신의 소중한 원고들을 다 물에 적셔놓게 해 놓은 위층 아주머니. 너무 화가나 달려갔지만, 사과하기는커녕 뻔뻔하기만 한 그 모습에 화가 치밀어 어쩌면 분노를 실어 시인은 힘 있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하지만, 모양새 빠지게 그 말은 “이 여자가 정말 역반하장이네.”였단다. 그러자, 그 뻔뻔한 아줌마는 이 약점을 놓치지 않고 “적반하장이에요.”하고는 문을 탁 닫고 들어갔단다.
왠지 내가 그 실수의 주인공인 듯싶어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하고, 그래서 더 분하기도 하다. 얼마나 분했으면... 하지만, 진심은 우습다. 시인에겐 미안하지만 말이다. 아니 어쩌면 시인은 이런 글을 통해, 웃을 일없는 세상에서 한번 웃으라고 자신을 희생한 건 아닐까?
담담하지만, 자신의 부끄러운 일을 고백하는 글도 기억에 남는다. 백두산 천지에서 오줌을 누었고, 돌 하나 몰래 집어 온 그 부끄러운 잘못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그 용기가 멋스럽다. 엄청난 잘못을 행하고도 반성은커녕 도리어 더 큰소리를 치고, 더 많은 악행을 행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많은 시대에 자신의 체면과 권위가 깎일 수 있지만, 그런 소소한(?) 잘못을 고백할 수 있는 용기. 이러한 용기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면 이 사회는 분명 더 멋스러운 사회로 변모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책의 앞부분에 나오는 「땅 위의 직업」이란 글이다. 이 글을 읽으며, 아, 그래. 세상에는 땅위의 직업을 갖는 그것이 소원인 분들도 있구나 싶었다. 우린 언제나 힘들다 힘들다 말하지만, 그 힘겨운 삶이라할지라도 이미 누군가의 소원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작가의 말처럼 위안을 받을뿐더러, 왠지 투정부리며 살아가는 모습이 부끄럽기도 하고, 또한 각오를 다지게 된 글이기도 하다. 그렇다. 어쩌면, 나의 지금의 힘겨운 삶은 이미 누군가가 간절히 소망하는 소원을 이룬 모습일 수 있음을 기억하며 오늘도 힘차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에세이집이 대체로 그렇듯이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通讀)하는 것도 물론 좋겠지만, 책을 곁에 두고 그 때 그 때 잡히는 부분을 골라 적독(摘讀)하는 것도 좋겠다. 아니 어쩌면 이런 적독을 통한 정독(精讀)이 좋겠다. 그저 한 부분이라도 찬찬히 음미하며 읽을 때, 작가의 사색의 결과가 내 것이 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