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치야 깐치야
권정생 엮음, 원혜영 그림 / 실천문학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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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권정생 선생님의 작품 세계에 푹 빠졌던 적이 있다. 그 가운데는 새 책을 사 본 것들도 있지만, 헌책방을 뒤지며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 선생님의 책을 찾던 기억도 있다. 정호승 작가의 에세이집에 실린 글 중에 「공씨책방」이란 글이 있다. 이 글은 헌책방을 했던 공 선생에 대한 추억을 담은 글인데, 공 선생은 정호승 작가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책을 내도 헌책방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생명이 긴 책을 내야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헌책방의 서가에 꽂힐 수 있는 책이야말로 좋은 책이다. 좋은 책이라야만 헌책방에 꽂힐 수 있다. 그럴 정도의 책이 아니면 아예 내지를 마라. 내 인생도 헌책의 생애처럼 헌책방 서가에 마지막까지 꽂힐 수 있는 그런 부끄럼 없는 인생이 되고 싶다.”

 

그렇다. 이 말처럼 권정생 선생님의 책들은 헌책방에 꽂히기에 충분한 책들이었다. 그렇기에 나 역시 몇몇 책들은 헌책방에서 구해 보았으며, 심지어 권정생 선생을 인터뷰한 기사를 실은 철 지난 문예지를 발견하고 기뻐하며 구입하였던 기억도 있다. 그런 권정생 선생님의 손길에 의해 모아진 동요집이 금번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동요집은 선생님이 살던 경상도 지역에서 직접 수집한 동요들로 민들레교회 주보인 『민들레 이야기』에 실렸던 동요들 위주로 엮어졌다고 한다.

 

많은 동요들이 우리 민족의 당시 정서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들이다. 물론, 경상도 사투리로 기록되어 있어, 경상도 사투리에 익숙지 않은 입장이기에 조금은 어려움도 있지만, 그럼에도 반복하여 읊조리다보면 그 느낌이 전해지는 동요들이다.

 

아무래도 힘겹던 시절이기에 삶의 고단함, 애환이 많이 담겨져 있는 동요들이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동요들은 어린이들이 흥얼거리는 노래다. 그런 동요의 내용조차 고단함과 삶의 애환이 가득하다는 것은 아이들의 눈에도 당시엔 참 힘겨운 시간을 살아냈구나 하는 생각을 말이다. 요즘 우리 삶이 힘겹다 할지라도, 동요 속에도 묻어나는 그런 굶주림의 아픔은 아니지 않은가(물론 여전히 기본적 생존권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도 없진 않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를 말한다)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요즘은 오히려 살을 빼기 위해 힘겨워하는 시대가 아닌가?

 

달도 달도 반달 / 영정도 반달 / 앵두나무 뒷산에 / 고모네 집에 갔더니 /

콩죽 갱죽 쒀 놓고 / 조곤조곤 먹다가 / 내가 가니 치우대 /

우리 집에 오거든 / 여도복상 열거든 / 하낱이나 줄까봐 / 죽까 죽까 봐아라

< 고모네 집에 갔더니 > 전문

 

없이 살아 온통 먹는 게 최대 관심사였던 시절의 우리네 풍경을 잘 느낄 수 있는 동요다. 고모네 집에 놀러갔는데, 기껏 콩을 갈아 만든 콩죽, 김치를 넣고 팍팍 끓인 갱죽을 먹던 처지임에도 그것마저 감추고 주지 않아 얻어먹지 못한 서러움을 표하는 아이의 심정이 어쩌면 당시 없이 살던 시절을 그대로 보여준다. 아울러, 우리 집에 오거든 그대로 복수해주겠다는 아이의 다짐이 괜스레 서글프면서도 웃음 짓게 한다.

 

뿐인가! 아이들이 부르던 동요임에도 그 안에 당시 사회상을 향한 해학이 담겨져 있음이 멋스럽다.

 

자라야 자라야 / 금자라야 /

어떤 놈이 양반 앞에 / 똥을 뿡뿡 뀌였노 / 단단히 알아보아라

< 자라야 자라야 > 전문

 

왠지 거들먹거리는 양반 앞에 똥을 뿡뿡 뀌길 바라는, 그래서 그 똥을 밟고 양반걸음을 걷던 양반이 미끄덩 넘어지길 바라는 민중들의 해학이 느껴진다. 그 외에도 많은 동요들을 감상하며 이러한 동요들을 직접 모았을 선생님의 노고가 고맙게 느껴진다. 아울러 당시 선생님이 수집하였지만, 출판사에서 출판하겠다고 가져가서 출판하지 못하고 사장된 동요들도 당시 출판 관계자들이 자료를 찾아보고 출간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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