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잡담
박세현 지음 / 작가와비평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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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雜談)이란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이렇게 설명한다. “쓸데없이 지껄이는 말.” 그렇다. 이 책은 제목처럼 시인이 쓸데없이 지껄이는 말이다. 그래서 잡담이 맞다. 일부로 아는 척하지도 않고, 일부로 아름답고, 선하게 말을 꾸미지도 않는다. 그래서 ‘잡담’이다.

 

처음, 시인의 글을 읽어가며, ‘뭐, 이런 글이 다 있지?’ 싶었다. 왠지 종편 시사 프로그램에서 패널들이 쓸데없는 소리를 지절대는 모습을 보는 것과 같은 산만함과 그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뱉어낸 듯한 언어들이 독자를 당혹케 한다. 하지만, 점차 읽어가는 가운데 묘하게 빠져든다.

 

시인이 적어 내려간 산문들은 논리적인 구성을 갖고 있지 않다. 산발적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하나의 제목으로 묶여 있는 글들이라고 해서 하나의 맥락을 가지고 있는 글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때로는 바로 앞 문장과 다음 문장이 안드로메다만큼의 간극이 있기도 하다. 그러니, 그저 펼쳐지는 부분을 읽어도 무방하다. 게다가 작가의 글이 때론 저속하기도 하며, 때론 말장난을 늘어놓기도 한다. 때론 비약이 심하여 이야기가 산으로, 삼천포로 빠지기도 한다. 때론 취중진담처럼 들리기도 하며, 때론 찌질한 소리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읽을수록 빠져드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글이 이 책의 특징이다.

 

책 제목처럼, 쓸데없는 지절거림과 같은 잡담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결코 쓸데없진 않다. 쓸데없는 지절거림, 잡담 안에 시인의 깊은 통찰력이 담겨 있으며, 시인의 시를 향한 영혼이 담겨 있다. 시인은 자신의 잡담 속에서 무엇보다 시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내뱉는다. 그러한 고민들을 몇 가지 살펴보자.

 

시인에게 있어, 시는 없는 구멍에 뭔가를 자꾸 집어넣으려는 몸짓이란다(38쪽). 그러니 시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작업일지를 상상케 한다. 없는 구멍에 뭔가를 자꾸 집어넣으려는 어리석은 몸짓이라니.

 

게다가 시는 모호하다. 그래서 시인은 시는 오리무중이라 말한다(95쪽). 시는 불가피하게 오리무중을 오리무중으로 뚫고 나간다는 것. 심지어 너무 분명한 시는 시가 아니라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독자로서 시를 잃고 이해되지 않을 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말할 때, 마침내 시는 시 같아진단다(15쪽).

 

아~~ 그래서 시들이 어려웠구나 생각해본다. 하지만, 너무 시인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있는 시는 솔직히 공감하기 어렵고 괜한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생각은 떨쳐낼 수 없다. 공감할 수 없는 문학은 글쎄다.

 

물론, 다양한 시에 대한 정의를 내려가며 시를 향해 접근하는 잡담들이지만, 결국 시인은 시는 정의할 수 없는 것이라 말한다. 그러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또다시 시를 이렇게 정의한다.

 

“시는 정의하는 순간 틀어진다. 시는 정의하기 직전까지다. 마치 그대의 동의를 얻기 직전까지의 번뇌와 망설임과 괄호 안에 가둔 희열의 순간이 사랑을 생성시켜 주는 것처럼. 나에게 시는 강력한 현실이자 더없는 환상이다. 아무 것도 아니면서 그것 없이는 살아도 살아지지 않는 그 무엇이다.”(268쪽)

 

결국 시인에게 시란 그것 없이는 살아도 살아지지 않는 것, 다시 말해 시인에게 시란 정의할 수 없는 것이지만, 시인의 생명이라고 하면 과장된 표현일까?

 

시에 대한 시인의 정의 가운데 이러한 정의가 가장 마음에 와 닿는다. 시는 언어에 묻어 있는 삶이다(210쪽). 그렇기에 시는 삶을 입는다(229족). 이 말을 바꿔, 삶을 입지 않은 추상적인 언어유희는 시로서 부적격하다는 의미로 봐도 될까? 삶과 괴리된 언어적 잔치는 참 시가 될 수 없다고 말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자기를 응시하는 것이고, 자기 삶의 미열과 증상을 문자 언어로 다스리려는 인문적 실천입니다. 시 쓰기는 언어와 언어의 문맥 속에 자기를 위치시키려는 자발성이지요.(302쪽)”

 

산만한 잡담일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시인의 잡담에 묘하게 마음이 끌리는 이 책, 『시인의 잡담』을 통해, 시에 대한 시인의 자기 성찰에 귀기울여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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