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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물푸레나무의 기억 ㅣ 북멘토 그래픽노블 톡 2
박건웅 지음, 최용탁 원작 / 북멘토(도서출판) / 2015년 5월
평점 :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5/0616/pimg_7045701931223951.jpg)
국민보도연맹사건에 대한 책이 나왔다. 최용탁 원작의 동명제목의 소설인 <어느 물푸레나무의 기억>을 그래픽노블로 새롭게 출간한 이 책 『어느 물푸레나무의 기억』은 북멘토 출판사에서 출간되고 있는 <북멘토 그래픽 노블> 시리즈 두 번째 책이다.
먼저, 국민보도연맹사건이 어떤 사건인지를 살펴보자.
보도연맹 학살사건(保導聯盟虐殺事件)은, 1950년 한국전쟁 중에 대한민국 국군·헌병·반공 극우단체 등이 국민보도연맹원이나 양심수 등을 포함해 공식적으로 확인된 4934명과, 10만 명에서 최대 120만 명으로 추산되는 민간인을 살해했다고 추정되는 대학살 사건이다. 보도연맹원 학살 사건이라고도 불린다. 이 사건에는 미군도 민간인 집단 학살 현장에 개입했다. 오랜 기간 동안 대한민국 정부가 철저히 은폐했고 금기시해 보도연맹이라는 존재가 잊혀져 왔지만, 1990년대 말에 전국 각지에서 보도연맹원 학살 사건 피해자들의 시체가 발굴되면서 보도연맹 사건이 실제 있었던 사건임이 확인됐다. 2009년 11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해 정부는 국가기관에 의해 민간인이 희생되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현재에도 사건 진상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국민보도연맹은 1949년 6월 5일 좌익 계열 전향자로 구성됐던 반공단체 조직이다. 1948년 12월 시행된 국가보안법에 따라 ‘좌익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사상전향시켜 이들을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취지와 국민의 사상을 국가가 나서서 통제하려는 이승만 정권의 대국민 사상통제 목적으로 결성됐다. 일제 강점기때 친일 전향 단체였던 대화숙을 본떠서 만든 조직체 보도연맹은 ‘대한민국 정부 절대 지지’, ‘북한 정권 절대 반대’, ‘인류의 자유와 민족성을 무시하는 공산주의사상 배격·분쇄‘, ‘남로당,조선 로동당 파괴정책 폭로·분쇄’, ‘민족진영 각 정당·사회단체와 협력해 총력을 결집한다’는 주요 강령 내용 등을 내세워 철저히 반공주의 강령으로 삼았었다. 국민보도연맹 외견상 민간단체 성격을 띠었으나, 조직체제를 보면 총재직은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던 김효석이 맡았고, 고문으로는 신성모국방장관, 지도위원장에는 이태희 서울지검장등이 맡았다. 각종 장관들이 국민보도연맹 요직을 맡았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민간단체라기보다는 관제 단체에 가까웠다.
- 출처 : 위키백과사전
위의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국민보도연맹은 국가가 주도하여 좌익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우익으로 계도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다. 그 수장을 내무부 장관이 맡을 만큼 국가정부와 밀접한 관계가 있던, 국가가 조직하고 관리하는 단체였던 거다. 그런데,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 정권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들 좌익성향을 가진 자들이 적에게 동조하여 반정부활동을 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하였던 거다. 그래서 사전에 그런 불안요소를 제거하려 한다. 이런 얼토당토않은 망상은 그저 망상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 현실에서 실현된다. 수많은 보도연맹원들을 잡아 학살하기 시작한 것이다.
작가도 말하였듯이 마치 구제역이 돌자 멀쩡한 가축들을 생매장한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우린 구제역이 발발하여 마치 큰 일이 날 것처럼 수많은 가축들을 도축하였지만, 정작 구제역에 의해 죽은 가축은 없다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또한 우리는 사랑니가 나면 사랑니를 뽑아버리곤 한다. 왜냐하면, 사랑니는 너무 안쪽에서 나기에 분명 썩어 장차 더 많은 고통을 주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멀쩡하게 썩지 않고, 도리어 안쪽에서 이빨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랑니 역시 적지 않다. 그럼에도 잠재적 위험요소가 있으니 뽑아버려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생각에서 머물지 않고 뽑아버리는 행동을 우린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뭐, 사랑니는 그저 하나의 이빨에 불과할 뿐이고, 구제역이란 괴물로 인해 도축된 가축들은 그저 가축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은 논리로 인해 이 땅에서 스러져갔던 수많은 생명은 사랑니나 가축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 과연 잠재적 위험요소일지 모른다는 추정만으로 그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당시의 정권과 그 안에 기생하던 권력자들의 죄악이 무엇으로 씻길 수 있을까?
게다가 이 일을 일선에서 행한 자들은 대한민국 군인, 헌병, 경찰이었다. 이들이 누구인가? 자국의 국민을 보호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자들이 아닌가! 그럼에도 도리어 자신들의 존재목적을 상실하고, 도리어 자국의 국민들을 학살하였던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엄청난 일이 벌어졌고, 수많은 유가족들이 있음에도 그들은 그동안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입을 벌리는 순간 그들은 빨갱이가 되어 자손대대로 대한민국 땅에서 살아가기 힘겨웠기 때문이다. 반공이데올로기라는 괴물이 이들의 가슴에 다시 한 번 치유키 어려운 상처를 준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런 씻기 어려운 상처 치유를 위해 노무현 정권은 국가의 잘못을 공식적으로 사과하였다는 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이 일을 행한 주체세력들은 이 일에 대해 사과하였나? 아니, 그 일에 대한 반성이나마 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이승만의 유가족들은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궁금하다. 또한 당시 수많은 민간인들을 죽음의 웅덩이로 몰아넣도록 명령을 하였던 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그 일에 충실히 임무(?)를 완수한 자들은 과연 이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들은 과연 자신들의 만행을 반성하기나 할까?
당시 산청, 함양 지역에서 민간인 학살 사건을 저지른 서른이 채 안 된 국군지휘자는 자랑스럽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그저 위에서 시켜서 한 것일 뿐이고, 지금도 그것이 나라를 지키는 애국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그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보도연맹사건으로 인한 상처는 치유되기 어려울 것이다. 당시 그 엄청난 일을 벌인 당사자들과 그 후손들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바라는 것은 꿈에 불과한 것일까?
작가는 말한다. “거대한 힘을 가진 국가폭력에 우리가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기억하는 것”이라고. “오직 기억하는 것이 망각의 시대 뒤로 숨은 추악한 진실을 끌어내고 학살자들을 정의의 심판대에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바로 그 유일한 무기, 정의의 심판을 위해 어느 물푸레나무는 기억한다. 그리고 오늘 우리 역시 이 끔찍한 일을 기억하려 한다. 너무 끔찍하고 너무나도 슬픈 일이기에 기억에서 지우고 싶지만 말이다.
바로 그 끔찍한 기억, 그 통곡의 기억들을 작가는 이 책 『어느 물푸레나무의 기억』에서 흑백 판화 그림들을 통해, 우리에게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전해주고 있다. 그 기억에 접속하는 것이 사실 힘겨운 시간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한 동안 그 아픔, 그 통곡, 그 슬픔에 영혼에 상처를 입게 된다. 하지만, 진정한 이 땅의 화해, 이 땅의 치유를 위해, 우린 여전히 슬픔의 역사를 기억해야 하고, 그 기억에 접속해야만 한다. 힘겹겠지만,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어느 물푸레나무가 전하는 그 기억에 접속할 수 있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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