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하루는 늘 너를 우연히 만납니다
김준 지음, 이혜민 그림 / 글길나루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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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이란 시인을 처음 만났다. 물론 시인은 이미 시집을 두 차례 냈던 시인이지만, 그의 3번째 시집으로 처음 그를 만났다. 시를 통해 내가 만난 시인은 사랑의 시인이다. 시인에게는 삶이 곧 사랑이다. 그렇기에 3번째 시집 『내 하루는 늘 너를 우연히 만납니다』에 수록된 모든 시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사랑을 노래하지 않는 시는 단 한편도 없다. 왜냐하면, 그에게 삶이 곧 사랑이기 때문이다.

 

삶은 사랑 그리고 사랑

<삶은 사랑 그리고 사랑> 일부

 

삶이 곧 사랑이고, 사랑이 곧 삶인 시인에게 있어, 안타깝게도 사랑은 아픔이다. 눈물이며, 슬픔이다. 온통 이별의 아픔이 가득하고, 이젠 곁에 없는 사랑하는 이를 향한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그렇기에 시인의 노래는 대부분 애가(哀歌)이다.

 

그렇다면, 시인이 노래하는 이별, 그 애끓는 사랑의 대상은 누구일까? 물론, 그 대상이 누구인지는 대부분 모호하다. 언제나 병약하게 살다 세상을 떠나신 엄마일 수 있다. 또한 군인으로 언제나 강하게 사셨던, 하지만, 이제는 곁에 없는 아버지일 수도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뜨거운 사랑을 남겨놓고 떠난 연인일 수도 있다.

 

먼저, 엄마를 향한 그리움, 그 아픈 사랑의 노래들을 몇 편 본다.

 

기차 타고 외갓집 가는 길 / 흰 서리로 앉은 할머니께서 / 속으로 참아오는 눈물 가득 표현하던 / 이젠, 네 어미는 죽었다는 말을 / 그 기차 소리에 묻혀 듣게 되었지 / 그때 하늘이란 곳에도 / 기차가 다니냐는 내 물음이 / 그렇게 슬프게 보였나 봐

<슬픈 기억> 일부

 

아들아, 알고 있었니 / 사랑한다 / 그런데 시간은 / 늘 너에게만 몹쓸 짓을 하고 / 내겐 따뜻한 말 한마디도 남길 / 그런 여유마저도 없었구나 / 아들아 / 사랑한다

<못다 한 어머니 말씀> 일부

 

소년이 말을 하네요 / 벼들이 줄을 선 그곳엔 / 아직 온기처럼 피던 / 당신의 체온이 남겨져 있다고요 // (중략) / 그 체온 깊은 사랑 앞에서라면 / 다음 생에는 울지 말아요

<다음 생에는 울지 말아요> 일부

 

갑자기 곁을 떠난 엄마, 그리고 그 엄마가 시인에게 마지막 말을 전할 수 있었다면 무슨 말이었을지, 그리고 그 엄마에게 전하는 시인의 마지막 소망의 시어들이다. 여기에 시인의 눈물과 아픔의 원형이 있다.

 

또한 시인은 아버지를 향한 사랑, 그 안타까움을 고백하기도 한다.

 

남자는 울면 안 된다고 하셨죠 / 그런데 슬플 때 / 눈물이 대신하는 시간들이 / 이 남자에게도 오고야 말았네요 // 눈가를 훔치며 거짓 웃음으로 / 당신이 떠난 자릴 지킬까요 / 슬프다는 말 대신에 / 당신이 남겨준 그리움 속에 / 그저 머물고 있다 할까요

<남겨진 기다림의 자리보다> 일부

 

남자는 울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던 아버지, 하지만, 그 아버지의 부재 앞에 시인은 눈물 흘리고 만다. 홀로 남겨진 자가 그 그리움의 자리에서 거짓 웃음을 지을 수 없기에. 또한 이런 눈물의 이면에는 한 번도 아버지에게 사랑한다 고백하지 못했던 사내들의 무뚝뚝함이 감춰져 있던 건 아닐까?

 

말하고 싶을 때 / 말하지 못하던 말들을 / 이젠 해야 할까요 / 비인 골목마다 비추던 / 슬픔으로 묻어온 불빛을 / 느끼고서야 알게 된 / 당신이란 말들을 / 이제는 해야 할까요 // (중략) // 떨리는 목소리로 / 숨막히는 가슴을 부여잡고 // 「사랑합니다」라고.

<사랑합니다> 일부

 

물론, 시인의 이 고백은 연인을 향한 고백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이 노래에서 아버지를 향한 고백을 느낀다. 나 역시 아버지에게 한 번도 “사랑합니다.” 고백한 적이 없다. 이젠 연로하신 분, 더 오랜 시간 곁에 계시길 소망하는 분, 하지만, 이별의 시간은 언젠가는 이르게 될 분. 그 분에게 “사랑합니다.” 고백해야겠다. 더 늦기 전에.

 

물론, 대부분의 사랑노래는 연인과의 이별 그 이후의 아픔에 대해 노래한다. 시인은 사랑하는 이의 떠남을 아파한다. 불가에서 말하는 생노병사 다음으로 힘겨운 고통인 애별리고(愛別離苦)이기 때문에 아프다. 슬프다. 온통 눈물 가득하다. 그리고 그리움이 함께 한다. 그렇기에 시인의 노래는 대부분 애가(哀歌)이다. 하지만, 그저 아픔에서 그치지만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랑이란 비록 아플지라도 사랑만으로도 이미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인은 이런 행복을 준 연인을 미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비록 아프지만, 이것 역시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 겨울을 타고 / 얼어버린 / 이별이란 말 / 묻어 놓은 그리움이 / 계절을 타고 오지만 / 잊어도 되어요 / 잊으려도 잊을 수 없는 / 사랑한다는 그 말 / 아파도 그댈 미워하지 않아요

<아파도 그댈 미워하지 않아요> 일부

 

떠난 사랑을 미워하긴 커녕 시인은 여전히 그 사람의 그림자로 남길 소망한다.

 

그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 나는 그대 곁에 머무르고 싶다 / 그대에게 햇살이 아니라도 / 그대와 함께 한다면 / 그대 위의 그림자가 되고 싶다.

<햇살이 아닌 그림자라도> 일부

 

누군가를 이처럼 사랑할 수 있다는 건 이미 축복 아닐까? 비록 결과는 아픔과 눈물 가득할지라도. 사랑의 노래에 취하고 싶은 분에게 『내 하루는 늘 너를 우연히 만납니다』를 추천한다.

 

참 이 책은 표지가 세 가지다. 그리고 시집 안에 담겨진 그림들도 허투루 지나 보내기엔 너무 아까운 좋은 그림들이다. 그렇기에 시집이 아닌 시화집이다. 이혜민 화가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기분 좋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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