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남자 2
전경일 지음 / 다빈치북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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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껏 게으름을 피우다 이제야 전경일 작가의 『조선남자』를 펼쳐 들었다. 2권으로 구성된 천 페이지 가까이 되는 적지 않은 분량의 소설이다. 그럼에도 눈을 뗄 수 없는 뭔가가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루벤스의 작품, <조선남자>(또는 한복 입은 남자)의 주인공, 그리고 <성 프란시스코 하비에르의 기적> 가운데 등장하는 ‘조선남자’에 대한 모티브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당시 조선이란 나라가 유럽에 알려지지도 않았던 시대인데, 어떻게 조선남자가 루벤스의 작품 가운데 등장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 작가는 소설가의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때는 임진왜란, 정유대란이 끝난 지 9년이 지난 때, 조선남자는 조선을 전란의 소용돌이로 집어 삼켰던 왜의 뛰어난 무기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지를 조사하려 한다. 그리고 그 뛰어난 무기를 만드는 법(무구의 본)을 구해 조선의 부강을 꾀하려 한다. 물론, 아무도 이런 생각에 동조하지 않기에 개인적인 시도에 불과하다. 그런 그가 드디어 화란의 저지국 항구에 도착한다. 소설은 이 시점에서부터 시작한다. 과연 그는 무사히 ‘무구의 본’을 구해 조국 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 소설은 몇몇 부분이 돋보인다. 먼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서술방식이다. 소설의 시작은 조선남자가 이미 화란에 도착한 상태에서부터 시작한다. 조선남자가 조선을 떠나 화란에 이르기까지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그를 둘러싼 세력의 긴장감은 어떤 것인지 모른 상태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치 영화를 중간부터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과거를 오가는 서술방식을 통해, 점차 조선남자를 둘러싼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한 꺼풀 한 꺼풀 알게 되는 재미가 있다. 이러한 점이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닐까 싶다.

 

여기 과거에 일어난 사건의 서술 역시 시기적으로 순차적으로 회상된다(사실 회상이라기보다는 그냥 서술이라고 보는 편이 좋을 듯. 물론 회상하는 부분도 없지 않다. 심지어 회상의 회상도 있다). 한양에서 부산포로, 조선을 떠나 유구국으로, 유구국에서 중국의 복건항으로, 또 다시 여기에서 지금의 인도네시아 조와 상관으로, 그리고 종국에는 화란에 이르기까지에 일어난 사건들을 순차적으로, 그리고 현대사건의 전개와 교차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런 형식이 이 소설의 가장 두드러진 전개이다.

 

이런 서술방식은 독자들로 하여금 진행되어진 과정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하나하나 알게 해 준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반면 단점 역시 없지 않다. 사건 전개흐름이 끊긴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때론 혼동스럽기도 하고, 굳이 이렇게 교차적으로 전개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도 든다. 그런 현재와 과거의 교차적 진행보다는 순차적으로 진행했더라면 더욱 박진감이 넘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 다른 두드러진 점은 등장인물들 간의 갈등구조다. 조선남자, 유구국 수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상관장 간에 긴장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상관장과 공작으로 대표되는 화란의 신흥부자 vs. 구 귀족의 갈등구조와 신교 vs. 가톨릭의 갈등구조 역시 돋보인다. 이러한 갈등구조는 서로 얽히고설켜 있다. 뿐 아니라 상관장에 의해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된 로라와 그 남겨진 자매와 남동생 그리고 이들과 상관장의 갈등구조도 있다. 여기에 더하여 부르조아와 민중들의 대립구도 역시 존재한다. 이러한 갈등구조 안에 조선남자가 던져진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갈등구조를 규정하는 명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탐욕이다. 때로는 종교적 신념조차 이런 탐욕을 감추려는 수단에 불과하다. 아울러 자신의 유익 앞에 영원한 우방도 적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물질, 그리고 그 물질을 향한 탐욕이라는 거대한 괴물만이 존재할 뿐. 작가는 소설을 통해, 이러한 인간의 더러운 탐욕을 끊임없이 고발하고 있다.

 

또 하나의 대조는 바로 이러한 탐욕 가득한 세상, 물질의 노예, 욕망의 포로가 된 세상이지만, 이러한 세상과 유리되어 있는 존재, 조선남자다. 조선남자가 조선 땅에서부터 시작하여 유구, 복건, 조와, 화란에 이르기까지 머나먼 여정을 떠났으며, 여전히 고단한 여정 가운데 서 있는 이유는 자신의 유익을 위한 탐욕이 아닌, 자신의 조국, 그리고 동포를 생각하는 이타적 마음에서다. 더 이상 임진왜란과 같은 전쟁으로 인해 사랑하는 동포들이 고통당하지 않게 하기 위한 일, 그 사명을 위한 자신의 투신이다. 탐욕을 거부하는 숭고한 신념이 존재함을 조선남자를 통해 작가는 보여준다.

 

또한 이처럼 돈에 의해 굴러가는 세상이지만, 이러한 세상에도 구원은 있다. 그 구원의 한 모습이 앞에서 이야기한 조선남자의 신념이라면, 또 하나는 사랑이다. 조선남자를 향한 유구국 고미의 사랑, 그리고 화란에서의 조선남자와 다나의 사랑이 그것이다. 물론, 이 사랑들 역시 모두 안타까움을 남기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사랑이 돈의 힘에 삼켜지지 않는 유일한 힘이며 구원의 원동력이다.

 

루벤스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조선남자만으로 살려낸 “조선남자”, 그의 존재가 오늘도 여전히 물질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이 세상에 한 줄기 청량한 바람, 아름다운 모델이 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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