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편지
이중섭 지음, 양억관 옮김 / 현실문화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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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대표적 인물로 대향(大鄕) 이중섭을 꼽는데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천진난만하게 노는 아이들과 게, 그리고 물고기의 그림들, 그리고 황소 그림으로 유명하기에 미술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은 분들이라 할지라도 이중섭의 그림 몇 점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오늘 우리들의 사랑을 받는 미술가인 이중섭. 하지만, 그의 실제 삶은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불행한 삶이기에 그의 작품과 인생이 오늘 우리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은 아닐까?

 

적국인 조선과 일본 남녀간의 사랑, 그 국경을 넘는 사랑으로 아름다운 로맨스를 완성하는 듯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일본과 한국 이렇게 서로 떨어져 살아가며, 서로를 그리워하던 이중섭의 애끓는 마음을 잘 알 수 있는 책이 바로 『이중섭 편지』다. 제목 그대로 이중섭이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에게, 그리도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모은 서간집이다.

 

이 책, 『이중섭 편지』를 읽는 내내 마음이 아려온다. 그토록 절절하게 사랑함에도 함께 할 수 없는 그 안타까움에 책장을 덮기를 수차례 반복하게 된다. 불가에서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 다음으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의 고통이라 한다. 일명, 애별리고(愛別離苦). 이중섭 그의 편지를 읽어가는 내내 바로 이 고통, 애별리고(愛別離苦)를 절실히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이러니 한 것은 그의 편지 내용은 온통 희망과 다짐, 그리고 장밋빛 미래를 향한 확신으로 가득 차있다는 점이다.

 

그의 삶은 희망보다는 절망과 좌절로 가득할 법하다. 믿었던 가까운 사람의 배신, 그로 인한 경제적 압박,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가족과의 이별 그리고 그리움. 무엇 하나 허투루 여길 수 없는 아픔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는 거듭 거듭 반복되며, 희망을 써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아마도 그림을 향한 열정과 가족사랑 때문이 아닐까 여겨진다. 여기 그의 편지 가운데 한 구절을 적어본다.

 

“돈은 편리한 것이긴 하나 ... 돈이 반드시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지 않아요. 진정한 인간성의 일치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라오. 우리 부부는 가난 따위가 절대로 흔들어놓을 수 없는 굳건한 인간성을 바탕으로 맺어졌다오. 서로 뜨겁게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면 행복은 우리 네 가족의 것이라오. 안심, 안심, 안심해요. 가난에도 흔들리지 않는 우리 네 가족의 멋들어진 미래를 확신하고 ... 밝은 마음으로 살아가요. 진정으로 사랑하고 더욱 더 서로 사랑하여 하나로 녹아서 올바르게 힘차게 살아가요.”(64쪽)

 

거의 모든 편지들이 이러한 내용의 반복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가족을 향한 희망과 그림을 향한 열정을 품고 살아갔던 그였지만, 결국엔 서로 함께 하지 못하고 세상을 등져야만 했던 그의 일생을 생각하며,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바로 내 곁에 있는 사랑하는 가족, 비록 삶 가운데 힘겨운 순간들이 없지 않지만, 그럼에도 마음껏 사랑할 가족이 곁에 있음이야말로 가장 큰 행복이 아닐까? 그 행복을 마음껏 누리고, 마음껏 사랑하자 다짐해본다.

 

『이중섭의 편지』들을 읽어가며, 또 한 가지 이런 생각도 해보게 된다. 이중섭 그는 오늘날 흔히 말하는 쿨한 남자는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거듭해서 아내에게 3일에 한 번씩 편지를 꼭 할 것을 반복하는 모습은 어쩌면 오늘날 마치 멋진 남성상으로 여기는 쿨한 모습과는 사뭇 거리가 있는 집착남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사랑스럽다. 사랑은 쿨한 것이 아니기에. 쿨하다는 건 결코 긍정적 표현이 아니다. 상대에 대한 관심 없음의 또 다른 표현이니까. 아내를 향한, 두 아들을 향한 이중섭의 사랑을 보며, 오늘의 사랑의 풍속도 한번 반성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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