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시피 카페
오정은 지음 / 디아망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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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하게 잘 쓰던 팬이 어느 날 갑자기 보이지 않아,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던 경험 한 두 번쯤은 모두 했을 것이다. 양말 빨래를 갤 때 보면, 꼭 한 짝만 있는 양말들이 있다. 나머지 한 짝을 끝내 찾지 못해 결국엔 짝짝이가 되어버린 양말들. 그런데, 이것이 내가 찾지 못해서가 아닌 실제 사라진 것이라면? 그리고 그렇게 사라진 물건이 어딘가로 전송된다면? 『미시시피 카페』는 바로 이런 발상에서부터 시작된다.

주인공 현기연이 그렇다. 기연의 주변에서는 물건이 자꾸 사라진다. 물건들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라지는 거다. 심지어는 남자친구(?)가 사라졌다. 자신의 집에서 팬티만 입고 자신에게 껄떡거리던 그 모습 그대로 뿅~~ 사라진 거다.

 

기연은 결국 이 일로 인해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만다. 사라진 그 진상 남자가 바로 거래처 직원이었던 것. 직장을 잃고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기연 앞에 웬 할머니 한 명이 찾아온다. 자신의 이름이 김춘분이라 밝히는 할머니는 기연에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한다. 기연에게서 사라지는 물건들은 모두 자신에게 도착한다는 거다. 그러니, 기연이 블랙홀이라면 자신은 그 사라진 물건들을 받게 되는 화이트홀이라는 것. 게다가 이 할머니의 행동은 예사롭지 않았으니 과연 할머니의 전직은 무엇일까?

 

여기에 더하여 또 하나의 화이트홀이 있으니, 그건 바로 고3때 같은 반이었던 우완. 공부와는 담을 쌓던 고3 말썽꾸러기에서, 이젠 잘 나가는 화장품 회사의 대표이사인 우완은 사실 ‘마이너스 제곱의 손’이다. 손대는 것마다 망하는 재능을 가진 그는 어느 날 기발한 영화 기획을 가지고 영화제작을 꾀한다. 하지만, 이미 그 기획안은 누군가 저작등록까지 마친 것이었으니, 바로 기연의 아이디어였던 것. 게다가 우완은 갑자기 한 남성의 영상이 자꾸 떠오르며 설레는 마음을 품게 된다. 갑자기 남성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고민을 하는데, 이 모든 것이 알고 보니 바로 기연의 생각이 전송된 결과였던 것.

 

이 소설의 또 한 명의 주연급이 있다. 바로 기연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데릭이다. 모계로 한국의 피가 흐르는 미국인 데릭은 어느 날 갑자기 기연 앞에 나타나 기연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는데, 인연인지 기연이 구한 아르바이트 카페의 사장이 바로 데릭이었던 것. 하지만, 데릭의 감춰진 신분은 CIA 요원이었다. 서울의 상공에서 갑자기 사라진 미 정보인공위성을 되찾기 위한 작전의 책임자였던 것. 이 사건 역시 기연의 블랙홀과 관련이 있는데. 과연 이들의 출현은 기연 앞에 어떤 결과를 낳게 될까?

 

이 소설 『미시시피 카페』는 인간 블랙홀인 기연을 중심으로 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시종일관 재미있게 다루고 있다. 무겁지 않은 가벼운 분위기, 유쾌한 분위기가 계속된다. 게다가 인간 블랙홀과 화이트홀이라는 발상이 참 기발한 소설이다.

 

하지만, 유쾌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작가는 기연의 회상을 통해,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현실을 그저 ‘관찰자’의 자리에서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게 한다. 기연의 할아버지는 살아생전 북녘 땅에 두고 온 가족들을 그리워했지만, 가족을 찾지 못해 이산가족 만남은 한 번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럼에도 끝내 가족들을 만나길 원했는데, 어느 날 기연은 한 남성의 전화를 받게 된다. 자신이 할아버지의 손자라는 남성. 하지만, 전화는 급히 끊기고, 기연은 금세 바쁜 일상 가운데 그 일을 잊게 되는데, 그 때 일을 기연은 이렇게 반추한다.

 

“한 번도 생각지 않은 일이었다. 고향을 등지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던 사람들. 새로운 땅을 선택하기 위해, 끌려가지 않기 위해 대사관 문을 붙들고 울부짖던 사람들. 그들은 뉴스 속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보는 기연의 시선이 ‘관찰자’의 그것 이상이었던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날, 그 느닷없는 전화 이후 처음으로 그녀는 깨달았다. 기연이 외면해왔던 현실이, 누군가에겐 생 전체일 수도 있다는 것.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왜 갑자기 전화를 끊었을까.”(138쪽)

 

일견 이 부분이 뜬금없는 내용이라는 생각이 없지 않았지만, 소설을 끝까지 읽어보면, 왜 이런 기연의 회상이 있어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기연은 나중에는 자신에게 있는 블랙홀의 능력을 베트남에 있는 탈북자들을 위해 사용한다. 물론, 이 능력으로 김춘분 여사의 가정사를 위해서도 멋지게 사용하지만.

 

오늘 우리 역시 누군가의 절실하고 처절한 삶의 투쟁을 그저 관찰자의 입장에서만 감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는 부분이다.

 

아무튼 이 소설, 참신한 발상과 재미나고 유쾌한 전개가 돋보인다. 그리고 때론 달달함도 팁으로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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