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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일간의 세계 일주 ㅣ 위대한 클래식
쥘 베른 지음, 박선주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15년 3월
평점 :
어린 시절 참 재미나게 읽던, 『80일간의 세계 일주』가 금번 크레용하우스에서 새롭게 출간되었다. 어린 시절 동심으로 돌아가 설레는 마음으로 책장을 펼쳐본다.
언제나 계획대로 시간에 맞춰 일상생활 하는 필리어스 포그는 어느 날 클럽 동료들에게, 80일 만에 세계 일주를 할 수 있다는 호언장담을 하게 되고, 이 일로 거의 전재산을 건 내기를 하게 된다(물론 실제 전재산을 건 것은 아니고 재산의 절반을 건 내기였지만, 소요경비가 나머지 절반가량이 들었기에 실질적으로는 전재산을 건 내기이다).
갑자기 잡힌 세계여행에 필리어스 포그의 하인 파스파르투는 고용된 지 하루 만에 이 황당한 여행의 동행이 된다. 과연 이들은 이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익히 잘 알고 있듯이 이 여행은 계획대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폭풍우를 만나기도 하고, 사소한 실수로 인해 법정에 서기도 한다. 인도에서는 순장당할 위기에 처한 아우다 부인을 구하기도 한다. 기차 노선이 개통된 줄 알았는데, 아직 개통되지 않은 구간이 있어, 코끼리를 타고 여행하기도 한다. 인디언을 만나기도 하고, 다리가 무너지기도 한다.
이처럼 예기치 않았던 수많은 순간들이 있지만, 둘은 이 위기를 잘 헤쳐 나간다. 여기에 쥘 베른의 작품철학이 담겨 있다. 인생이 그렇다. 인생은 언제나 내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지 않는다. 수많은 예기치 않은 순간들이 다가온다. 이러한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쥘 베른은 이러한 순간에 또 다른 예기치 않은 감추어진 섭리가 있음을 말한다.
기차철로가 끊어져 있을 때, 예정에도 없던 코끼리 여행을 하게 되고, 또 이 일로 인해 한 여인을 구출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게 되지만, 이 여인은 결국엔 필리어스 포그의 사랑의 동반자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마지막에 가서는 실패한 줄 알았던 미션이 성공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기차를 놓쳤을 때, 썰매로 이동하게 되기도 한다. 배를 놓쳤는데, 또 다른 노선을 향해 배로 이동하기도 하고, 폭풍우를 만나 목표지에 늦게 도착하였지만, 타고 가야 할 배가 기관을 수리하느라 일정이 늦춰지기도 한다(물론 이 배에는 결국 타지 못하지만). 이처럼, 쥘 베른은 우연에 담긴 신의 섭리를 강조한다. 이것이 쥘 베른 작품에 공통적으로 담겨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또한 쥘 베른의 작품은 언제나 휴머니즘을 중시한다. 아무리 내기가 중요하다 할지라도,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여인을 그저 모른 척 하지 않고, 자신의 전재산을 잃을지라도 잃어버린 하인을 나 몰라라 하지 않는다. 이것 역시 쥘 베른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내용인 휴머니짐의 강조이다.
여기에 더하여, 『80일간의 세계일주』에서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는 것이 오해가 갖는 위험성이다. 픽스 형사는 영국신사인 필리어스 포그를 은행 강도로 오해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그를 뒤쫓으며, 그의 여행을 방해한다. 픽스 형사의 오해는 오해를 넘어, 확신으로 나아가고, 그것은 그의 사명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 오해가 갖는 위험성이다. 우리도 어쩌면 누군가를 향한, 그리고 어느 부류를 향한 오해를 갖고, 이 오해로 말미암아 그들을 공격하고 방해함을 사명으로 착각하는 삶을 살고 있진 않은지 돌아보게 한다.
아울러서 『80일간의 세계 일주』는 내기를 위해 여러 나라를 경유하기에 그 다양한 나라의 문화를 우리에게 전해주기도 한다. 물론, 오늘날 우리에게 지구는 하나의 생활권이 되어 ‘지구촌’이란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100여 년 전의 작품임을 감안한다면, 이 책이 독자들에게 미지의 문명들을 전해주는 그런 역할도 했으리라 여겨진다.
또 하나 쥘 베른은 우리에게 ‘80일간’의 세계 일주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질문하기도 한다. 그저 도장만 찍듯 나라를 경유함이 물론, 당시의 교통의 발달을 이야기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그런 여행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거듭 고발하고 있다.
“그는 외국 관광조차 하인에게 시킨다고 하는 영국인이었다. 도시를 구경할 생각은 아예 없었다.”(37쪽)
“필리어스 포그는 진짜 여행을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지구 위에서 원을 그리며 한 바퀴 돌고 있을 뿐이었다!”(55쪽)
간혹 어린이용 보급판 도서가 내용전개가 매끄럽지 않은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하지만, 금번 크레용하우스에서 출간된 이 책 『80일간의 세계 일주』는 그런 느낌 없이 이야기를 매끄럽게 잘 전개시키고 있음도 큰 장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