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구나무
백지연 지음 / 북폴리오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MBC <뉴스데스크> 전 앵커로 너무나도 잘 알려진 백지연 씨가 이번에는 소설을 냈다. 그녀의 10번째 책이자, 첫 번째 소설이란다. 아무래도 백지연 씨의 소설이라 하여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단점도 장점도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유명인사라는 점에서 그녀의 소설이 이슈가 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것이다. 어느 누가 무명작가의 첫 소설이 이런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겠는가? 백지연이라는 이름 석 자, 그 행적은 분명 이 소설을 알리는 커다란 동력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도리어 단점도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백지연이 웬 소설?’ 이런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게다가 소설을 읽어나가며, 괜한 유명세로 소설을 썼음을 밝히려는 사명감(?)을 가지고 꼬투리를 잡기 위해 애를 쓸 수도 있기에, 이런 측면에서는 단점이 될 수 있다.

 

물론 나 역시 백지연이란 유명세로 인해 책을 손에 들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제 백지연이란 타이틀을 내려놓고 소설을 읽어본다. 그럴 때, 소설이 주는 참 재미를 누릴 수 있으니 말이다.

 

먼저, 이 책 제목이 『물구나무』다. 왜 제목이 『물구나무』일까? 이런 질문을 가지고 책을 접하면 금세 그 이유의 일부를 알 수 있게 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6명의 아줌마(40대중반이니 아줌마라 부르자)들은 고교 학창시절 3년 동안 절친으로 보냈던 사이다. 그리고 이들이 절친이 된 이유가 바로 ‘물구나무’에 있었다. 체육시간에 물구나무를 서게 했는데, 그 반에서 물구나무를 끝까지 서지 못한 친구들이 6명이었는데, 바로 이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똘똘 뭉쳐 고교 3년의 시간을 함께 하게 되었던 것.

 

하지만, 주인공 백민수(남자가 아닌 여자, 어쩌면 민수가 백지연 씨의 자전적 인물일 수 있겠다. 하지만, 소설을 소설일 뿐. 너무 개인적 접근은 사양하자.)는 고교 졸업과 함께 친구들과의 관계가 깨지는 데, 그 사건 역시 사소한 것이었다. 5명의 친구들이 민수에겐 알리지 않고 그들끼리만 미팅을 했던 것. 이 일로 자신만이 왕따가 되었다고 생각한 민수는 다른 친구들과의 관계를 끊었던 것이다.

 

그렇게 27년이란 시간이 흘러, 또 하나의 사건인 하정의 죽음을 계기로, 민수는 친구들을 하나하나 만나게 된다. 치과의사였던 하정의 돌연한 죽음. 그리고 그 죽음을 둘러싼 의문. 아니 죽음에 대한 의문을 떠나 절친의 죽음이란 엄청난 내용 앞에 민수는 친구들을 하나씩 만나며, 그동안 단절되었던 서로간의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

 

이 소설은 무엇보다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몇몇 소설가들은 어렵게 쓰는 것이 소설가의 사명인양 생각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은 독자와의 대화를 거부하는 행위가 아닐까? 무난하게 독자와 대화할 수 있음도 재능이라면 재능이 아닐까?

 

또한 작가는 우연한 사건이 그 인생을 결정지을 수 있음을 말하기도 한다. 물구나무서기를 할 수 없는 특별한 재능(?)과 그 사건이 6명을 특별히 친한 관계로 만들게 된다.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미팅과 같은 사소한 사건으로 인해, 그 끈끈하던 관계가 27년간이나 단절되어진다. 이는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이 결코 사소하지만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또 하나의 주된 메시지는 모든 인생에는 사연이 있다는 것이 아닐까?

재벌가의 며느리가 된 최고의 수재였던 수경도 27년 만에 만나 그 삶을 들여다보니 누구에게 말할 수 없는 아픔과 눈물, 그리고 장래를 향한 고민이 있다. 갑자기 죽음을 맞게 된 하정 역시 의사 가문의 딸이자 본인도 치과의사였음에도 남들이 알지 못하는 열등감과 눈물이 있었으며, 언제나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간 승미 역시 밝히고 싶지 않은 아픔이 있었고, 주인공 역시 아버지로 인한 아픔이 있었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바로 이 사실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모든 인생은 그 나름대로의 무게를 가지고 있다. 남들이 보기에 아무런 걱정이 없을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자신만의 눈물과 한숨이 존재한다. 물론, 남들이 알 수 없도록 갑옷을 뒤집어쓰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지만 말이다. 어쩌면 이것이 인생 아닐까? 그리고 이것을 깨닫는 것이 바로 “물구나무”가 아닐까? 내 입장에서만 바로 서서 상대를 판단하기 보다는 물구나무를 통해, 상대의 아픔과 눈물을 알아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 소설에서 진짜 “물구나무”의 의미는 학창시절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작가는 물구나무를 서면 보이지 않던 바닥의 먼지가 보이는 것처럼 세상을 살면서 경험이 쌓이다 보면 생각도 달라지고,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다라지며, 인생에 대한 평가역시 달라지게 된다고 말한다. 그런 캐릭터가 바로 미연이다. 미연은 학창시절에는 가장 공부가 뒤떨어지는 친구였다. 하지만, 민수는 말한다. 미연이 가장 지혜로운 삶을 살았노라고.

 

물론, 이 평가는 완료형은 아니다. 앞으로 각자에게 주어진 길을 어떤 모습으로 걸어갔느냐에 따라 평가는 다시 물구나무를 설 수 있다. 오늘 날 향한 평가는 어떤가? 오늘 내가 이루어가는 모습은 어떤가? 한번쯤 ‘물구나무’를 서서 내 인생을 살펴보는 건 어떨까?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내 인생의 먼지를 발견할 수 있다면 더욱 좋고 말이다.

 

또 하나의 ‘물구나무’는 바로 민수의 인생에 때론 깰 수 없는 악몽과도 같고, 풀 수 없는 매듭과도 같았던 아버지와의 관계다. 언제나 자신에게 강압적인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민수에게 하나의 콤플렉스로 남게 된다. 하지만, 소설이 말미에서는 이 아버지,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화해가 이루어진다. 꿈속에까지 등장할 만치 풀고 싶었던 매듭인 아버지와의 오해 내지 갈등은 ‘물구나무’를 통해 해소되어진다.

 

오늘 우리에게 화해가 필요한 상대가 있다면 마음의 ‘물구나무’를 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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