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은 초콜릿
패멀라 무어 지음, 허진 옮김 / 청미래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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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아침은 초콜릿』은 성장소설이다. 하지만, 흔히 접했던 성장소설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성장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정의 갈등구조와 이로 인한 고민과 방황, 그리고 화해가 이 소설 역시 존재한다. 또한 이성에 대한 내용 역시 존재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보여주는 색깔은 조금 다르다. 방황의 강도가 다르다고 말해야 할까?

 

많은 이들이 청소년기와 청년의 때의 방황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대표적 생태학자이면서 인문학자로 말할 수 있는 최재천 교수는 청년의 때에 많은 방황을 할 것을 적극 권장한다. 하지만, 단서를 붙인다. 방황과 방탕은 다르다는 것, 방황은 권장하지만, 방탕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코트니와 단짝 친구 재닛의 방황은 방탕이라 분류해야 좋을 것이다. 소설은 16세 소녀들의 과도한 음주와 느슨한 도덕관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상당히 문란한 성생활에 대해서도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보여준다. 이런 부분들은 여타 성장소설의 분위기를 염두에 둔 독자를 충격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게다가 1956년에 처음 출판된 내용임을 감안한다면, 동성애문제도 등장하여 상당히 센세이션을 일으켰을 법하다. 또한 이러한 갈등과 방황의 자리가 상류층 아이들에게서 보여줌도 특기할 만하다. 대체적인 성장소설의 삶의 자리가 기층세력임을 감안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삶의 자리가 초호화생활을 살아가는 그런 자리는 물론 아니다. 코트니의 엄마는 영화배우다. 하지만, 이젠 한물 간 배우다. 결국엔 어떤 캐스팅도 이루어지지 않아, 빚더미 위에 올라앉게 된 배우. 하지만, 여전히 철부지같은 그런 엄마(물론, 엄마 손드라는 결국엔 배우로서 안정된 자리를 찾는다. 기대치를 낮춘 상태로 말이다). 엄마의 엄마가 된 것처럼 엄마를 걱정해야만 하는 그런 삶의 자리가 어쩌면 코트니를 방황의 자리로 내몰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여타 성장소설처럼 코트니의 방황의 출발 역시 그녀가 처한 갈등과 고민의 현장에서 시작된다. 코트니의 이런 외침이 마음을 울린다.

 

“제가 어떻게 살아야 돼요? 물속에 들어가 살다가 밖으로 나와서 ‘제가 숨 쉬러 나온 게 거슬리셨다면 죄송해요. 안 나오도록 노력할게요.’ 뭐 그러기라도 해야 돼요?”(88쪽)

 

어쩌면 코트니 뿐 아니라 오늘 이 땅의 방황과 방탕 사이에서 흐느적거리는 청춘들의 깊은 곳에는 바로 이와 같은 외침이 자리하고 있지 않을까 여겨진다. 어쩌면 그들의 방탕이 숨 쉬기 위한 출구일 수 있다 생각할 때, 마음이 먹먹하다.

 

오늘 우리 자녀들의 방황 내지 방탕의 몸부림은 그 출발이 일정부분 부모에게 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 코트니는 느슨한 도덕관념정도가 아니라, 아예 도덕관념이 없는 듯 여겨지는 퇴폐의 상징 앤서니와 연인관계로 발전한다. 그 때, 코트니의 심리상태를 작가는 이렇게 묘사한다.

 

“이제는 앤서니와 함께하면서 자기 삶이 엄마의 삶과 얼마나 멀어졌는지 깨달았다. 독립했다는 느낌이 들어서 마음이 놓였다. 자신의 삶을 엄마가 아닌 남자들 주변에 두는 것이 더욱 안전하게 느껴졌다. 적어도 남자들은 실패하면 바꿀 수 있었다.”(218쪽)

 

‘적어도 남자들은 실패하면 바꿀 수 있었다.’ 바로 여기에 어쩌면 오늘 십대들의 방황이 자리하고 있지 않을까? 부부 역시 실패하면 바꿀 수 있다. 하지만, 부모는? 청춘들의 방황과 방탕이 오롯이 그들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님이 바로 여기에 있다. 딸을 둔 아빠로서 코트니와 재닛의 방황이 안타깝고, 또한 어른의 한 사람으로 미안함을 느끼게 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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