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레, 살라맛 뽀
한지수 지음 / 작가정신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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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레, 살라맛 뽀』, 나처럼 타갈로그어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제목이 참 독특하다. 하지만, 그 의미를 알면 전혀 독특하지 않다. 필리핀 현지인들이 사용하는 타갈로그어로 ‘빠레’는 ‘친구’라고 한다. 그리고 ‘살라맛 뽀’는 ‘고마워’. 그러니, 이 책 제목은 <친구! 고마워>나 <고맙다. 친구!> 쯤 될 것이다.

 

그렇담 뭐가 그리 고마울까? 사실, 소설을 읽다보면, 이 말은 유괴되어 살해당할 위기에 처해 있던 할아버지가 자신을 유괴하여 호시탐탐 살인의 기회만을 노리는 어수룩한 청부 살인자(아니 청부 살인 지망생이라 말하는 게 좋겠다)들에게 마지막 인사로 전한 말이다. 이것이 무슨 상황일까?

 

어수룩한 범죄자들인 제임스 박은 필리핀에서 중고차 영업소의 소장을 맡고 있다. 하지만, 그에겐 이것 말고도 여러 직업이 있다. 관광 가이드에 골프 부킹에, 대사관 뒤치다꺼리까지 한다. 그런 그는 어느 날 골프장에서 한 노인의 며느리에게서 청부를 받게 된다. 자신의 시아버지를 죽여주면 시아버지의 재산 1/10을 주겠다는 것. 그 돈이 자그마치 35억. 이에 사소한 사기나 치던 제임스 박은 자신의 후배 사기꾼 대니를 포섭하고, 결국 노인을 죽이는 일에 착수하게 된다. 인생역전, 인생대박을 꿈꾸며 말이다.

 

작가의 말처럼 주인공들은 착하지 않다. 아니 그들은 나쁜 사람들이다. 범죄를 꿈꾸는 자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하는 짓들이 밉지 않다. 아니 오히려 귀엽기도 하고, 그들이 살인이라는 극단적 방법 말고도 뭔가의 돌파구를 통해 잘 되면 좋겠다는 응원을 하게 만든다.

 

왜 그럴까? 무엇보다 그들의 심성이 악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소한(?) 범죄를 행하며 살아가는 이유는 그들이 악해서라기보다는 그들이 처한 삶의 정황이 어쩔 수 없는 밑바닥인생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인생. 그런 그들의 모습에 자연스레 그들이 그 밑바닥을 벗어나길 응원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생애 첫 살인을 꿈꾸며, 노인을 납치한 후 보여주는 모습들은 온통 어수룩할 뿐이다. 살인을 행해야 하는데, 제임스의 살인 동업자이며, 후배인 대니는 블러드 포비아다. 살인자를 꿈꾸며 피를 두려워한다니, 이 얼마나 한심한 모습인가? 그 뿐인가? 노인을 납치하고선 시시때때로 노인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고 노인의 옛 이야기에 빠져들기도 하며, 심지어 노인이 먹고 싶다는 음식을 사다 바치기까지 한다. 이런 이들의 모습에 각을 세우지 못한다. 도리어 웃음 짓게 된다.

 

뿐 아니라, 제임스는 그를 괴롭히는 깍두기님들로 인해 괴롭다. 이런 설정도 이들 서툰 살인 지망생들을 친근하게 느끼게 하는 듯싶다. 누군가를 괴롭히는 악당이 아닌 도리어 괴롭힘을 당하는 자의 편에 있음으로 우리로 하여금 그들을 동정하게 만든다.

 

이 소설은 무엇보다 재미있다. 그리고 착하지 않으면서도 착하다. 나쁜 짓을 꿈꾸는 그 모습, 그 과정들 안에서도 도리어 인간미를 느끼게 한다. 못된 짓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살피는 가운데, 도리어 감동을 느끼게 되고, 그들 어수룩한 살인 지망생들을 응원하게 된다.

 

이런 것이 바로 작가의 필력이겠다. 뿐 아니라, 재미를 쫓는 듯싶으면서도 삶의 밑바닥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의 애환을 솔직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음도 이 소설의 강점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다. 인생역전, 인생대박을 꿈꾸던 살인 지망생, 그들은 지금도 “나이스 샷!”을 외친다. 그들의 살인의 꿈이 이뤄지지 않아, 고맙다. 그리고 다시 웃음 지으며 “나이스 샷!”을 외칠 용기를 내줌이 고맙다. 나쁜 길을 걸으면서도 정도를 지켜줌에 고맙다. 못된 짓을 하면서도 인간미를 잃지 않아 고맙다.

 

“빠레, 살라맛 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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