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 용접공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제프 르미어 지음, 박중서 옮김 / 미메시스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우선 이 책, 『수중 용접공』은 그래픽노블이다. 그래픽노블이란 한 마디로 만화다. 물론 만화가 갖는 부정적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한 용어 가운데 하나가 ‘그래픽노블’이다. ‘그래픽노블’이 갖추어야 할 요소는 우선 노블(novel)이란 단어가 붙어, 스토리를 갖춘 마치 소설과 같은 그런 문학적 완성도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책, 『수중 용접공』은 그런 의미에서 완벽한 그래픽노블이다. 만화이기에 금세 읽을 수 있지만, 그 여운은 결코 짧지 않다. 읽는 내내 상당히 기이한 느낌이면서 또 한편으로 읽고 나서는 가슴을 따스하게 적시는 감동이 묵직하다.

 

재키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그곳에서 수중용접공으로 일을 한다. 이제 곧 아내는 출산을 하게 될 테지만, 재키는 아내 곁을 지키지 못한다. 자신이 근무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까지 그는 자원하여 물속에 들어가곤 한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그는 그렇게 해야만 된다고 여긴다.

 

그런 그는 물속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한 기시감인지, 실제로 환상의 세계 속으로 들어간 것인지는 독자 판단의 몫이겠다. 아마 환상의 세계로의 여행이 아닐까 싶다. 이 여행은 아울러 시간여행이기도 하며, 어쩌면, 그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여행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이 여행을 통해, 재키는 아버지가 실종되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자신이 어렸을 때의 아버지. 아버지는 실상은 인생 실패자였다. 술주정뱅이였으며, 아들과의 약속도 지키지 않았으며, 언젠가는 바다 속에서 보물을 건져 올릴 것이라는 꿈을 붙잡고 잠수를 하곤 하던 아버지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에도 역시 술이 취한 채 잠수하러 바다 속으로 들어가 영원히 나오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아버지가 사라진 때와 같은 나이가 되어버린 재키는 이런 환상의 세계, 또는 마음속에서의 여행, 그것이 무엇이든지, 이 기묘한 시간을 통해, 당시 아버지가 사라지게 된 이유를 알게 된다. 그건 바로 아들을 위한 것, 아들이 화가 나서 바다 속으로 던져 버린 시계를 건져내기 위해서였음을. 아버지의 실종은 바로 자신 때문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환상 속에서 아버지를 끌어안고 부자간의 온전한 화해가 이루어진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이고, 그리고 부모를 바라보는 자식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실패자처럼 보이는 부모라 할지라도,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 자식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건 모험을 할 의향이 있는 것이다. 그게 부모다. 반면 자식은 그런 부모의 마음은 몰라주며, 그저 자신에게 서운했던 것들에 더욱 매달리고 살아가는 것 아닐까?

 

이 기묘하며 감동적인 그래픽노블을 읽으며, 나 역시 아버지를 생각해봤다. 어린 시절의 아버지는 언제나 가정보다는 교회를 먼저로 생각하셨다(아버지는 목회자다). 그래서 아버지가 우리 형제들과 함께 하신 시간이 별로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바쁜 가운데도 힘겹게 시간을 내어 우리 형제들과 함께 하셨던 시간들이 적지 않았다. 형과 나만을 데리고 멀리 친척집에 기차여행을 하셨던 추억도 있고, 시내에 다녀오실 때마다 우리 형제들의 책을 한 아름 사오시곤 하셨던 기억도 난다. 없는 살림에 형의 옷을 사오시면서, 동생은 항상 형의 옷을 물려 입어 상처가 있다며, 일부러 같은 메이커의 옷을 사 오셨던 기억, 시골에 살면서 자주 신을 기회도 없었음에도, 그 옛날 금강 가죽 구두를 사다 주셨던 기억(시골이어서 당시 친구들은 고무신을 신고 다니던 친구들도 꽤 있었다) 등, 잊었던 추억들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아들들을 위해 온갖 정성을 쏟았음에 분명한데도, 아버지는 자신의 일에 바빠 우리에겐 무관심했다고 여기는 이게 바로 자식의 모습이 아닐까? 어쩌면 이 그래픽노블, 『수중 용접공』을 통해, 작가는 오늘 우리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잊혀진 추억 한 자락 다시 꺼내 보길 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버지께서 아직 내 곁에 계실 때, 함께 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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