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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징비록 - 전시 재상 유성룡과 임진왜란 7년의 기록
이재운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15년 2월
평점 :
임진왜란에 대한 소설들은 참 많다. 그만큼 우리의 관심을 끄는 소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 또 하나의 임진왜란에 대한 책이 있다. 이재운 작가의 『소설 징비록』이 그것이다. <징비록>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유성룡이 집필한 임진왜란 7년 동안의 기록이다. 국보132호로 지정되어져 있기도 하다. 그만큼 역사적 의의가 인정받고 있는 역사서이다.
작가는 바로 이 <징비록>과 함께 또 하나의 임진왜란에 대한 역사서인 <호종일기>를 참고하여, 이 소설을 창작했다. 팩트를 근거로 한 소설이기에 팩션 정도 되겠다.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강조하는 바는 무엇보다 국가 위기 앞에서 보여준 조정의 무능력함이다. 전쟁전의 대비 역시 엉망이었지만, 전쟁 발발 후의 대응은 더욱 엉망이었다. 이러한 조정의 무능력은 크게 두 부류의 무능력으로 정의할 수 있다.
첫째, 조선호를 끌고 가는 선장인 왕 선조 이균이란 인물이다. 선조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대체로 비슷할 것인데, 작가는 이 소설에서 철저하게 무능한 왕으로 그려내고 있다. 백성들의 안위보다는 자신의 안위에, 조선이란 국가의 운영보다는 왕위라는 타이틀을 꾸려나가는 데에만 관심을 가졌던 무능력한 왕. 조선호를 끌고 갈 가장 최종 책임자임에도 정작 그러한 능력은 없었던 자. 자신의 아들조차 자신의 안위를 위해 도구로 사용하던 왕의 모습을 작가는 잘 보여준다.
둘째, 선장을 도와 국가를 이끌어가던 벼슬아치들이다. 무엇보다 이들의 능력은 온통 입에 몰려 있음을 작가는 고발한다. 입만 살아 있는 자들, 나라와 백성보다는 자신의 당이 우선인 자들. 그렇기에 상대 파당의 의견은 무조건 반대하고 보는 자들. 그러한 구조적 악으로 인해, 전쟁발발의 조짐도 무시해 버리고, 전쟁이 진행되는 가운데서도 입만 바삐 움직이던 자들. 게다가 철저하게 무를 경시하며, 책상머리에 앉아 입으로 전쟁하던 자들. 바로 이들로 인해 조선이란 배는 흔들렸던 것이다. 작가는 바로 이 부분을 철저하게 강조한다.
이런 구도하에, 작가는 문보다는 무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아울러 이런 작업의 대표적 부분은 원균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원균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서로 다른 평가가 존재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작가는 어쩌면 이순신보다 원균에게 더욱 관심을 기울이며, 원균을 높게 평가하며, 원균의 마지막 전투, 그 패배와 죽음마저 책상다리에 앉아 입으로 전쟁하던 자들의 희생양으로 그려내고 있다.
또한 작가는 진주성 전투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백성의 위기를 외면한 조정, 백성의 목숨을 아무렇지도 않게 포기해 버린 조정, 아니 도리어 많은 백성들의 목숨을 사지에 몰아넣고도, 국가의 결정에 따르지 않았기에 마땅한 죽음이라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왕과 조정의 모습을 부각시킨다.
작가가 볼 때, 조선호라는 커다란 배를 끌고 가야할 책임을 가진 자들이 정작 능력 없는 자들이었다. 문제는 능력 없는 자들이 힘을 가지고 있었고, 분별력 없는 자들의 바르지 못한 결정이 국가 정책에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점이 아닐까?
어쩌면 작가는 이러한 조정의 무능력을 철저하게 부각시킴으로 오늘 우리의 세태를 꼬집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해본다. 국민의 목숨보다는 자신의 자리, 자신들의 집권,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곳의 유익을 우선으로 하는 자들, 그러면서도 자신들 개인의 이익 앞에서는 당을 떠나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과감한 결단력(?)을 보여주는 모습. 이런 모습이 우리 역사의 가장 부끄러운 역사인 임진왜란 당시 조정의 왕과 신료들의 모습이었으며, 어쩌면 오늘 반복되는 역사는 아닌지 작가는 꾸짖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징비록의 목적이 치욕의 역사가 다시 반복되지 않길 바라며 기록되었음에도 여전히 그 치욕의 역사는 반복되어졌고, 여전히 반복되어지고 있음에 대한 작가의 꾸짖음을 소설을 통해 들어보게 된다.
단지 아쉬운 점은 유성룡의 <징비록>에서 그 제목마저 가져왔음에도 유성룡에 대한 부분이 너무 생략되어져 있음이 아쉽다. 유성룡에 대한 연구와 소설 속에서의 역할을 증대시킴으로 수많은 임진왜란에 대한 이야기들과 차별화 하였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작가가 강조하는 바가 조정의 무능력을 우리에게 고발하고자 함이었다면, 그 역할은 충분히 했다고 여겨진다.
그 치욕의 역사가 이제 더 이상은 우리의 역사 가운데 반복되지 않길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