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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의 황제
김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평점 :
이 책, 『라면의 황제』는 작가의 단편소설 9편을 묶어 출간한 단편소설집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9편의 소설들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여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모든 소설들이 참 재미나고 흥미롭다. 사실 9편 모두 비슷한 구도를 가지고 있다. 어쩌면 작가가 글을 써가는 공식 아닌 공식, 소설을 싸안는 틀이 있는 듯싶은 느낌을 받게 한다. 대체로 한 가지 사건의 주체가 있고, 그 사건과 연결되는 또 하나의 별개의 사건이 있다. 이런 사건들은 작가의 손을 통해 교묘하고 멋스럽게 연결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가 왕래하고, 현재와 미래가 왕래한다. 이처럼 시점의 왕래가 작가의 소설에서는 빈번하다.
또 하나 공통점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취재의 형식이든지, 취재하는 주체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아무도 관심 갖지 않던 어떤 책이나, 기사, 잡지 등이 등장하기도 한다. 대체로 이러한 공통점들이 작가가 글을 써가는 어떤 공식 아닌 공식으로 자리 잡고 있는 듯싶다.
이 책을 읽으며, 이야기를 이런 형식으로 꾸밈없이 담백하게 써감에도 대단히 흥미롭고, 때론 박진감 넘치며, 때론 감동을 주기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글을 써가는 또 하나의 독특한 방식을 배우기도 하였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때론 기괴한 듯싶다가도 웃기며, 때론 뭔가 나올 것 같다가도 허망하기도 하며, 때론 음침한 듯싶다가 뭉클하기도 하다. 전체적인 글의 분위기를 생뚱맞다고 엉뚱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한 마디로 독특하다. 그럼에도 글을 참 달게 잘 쓴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또한 때론 가벼운 듯싶지만, 그 안에 메시지들이 감춰져 있다. 아마도 작가의 스타일이 직접적인 언급도, 그리고 꼬고 또 꼬는 스타일도 아닌 듯싶다. 하지만, 대체로 이 이야기를 통해, 뭔가 말하고 싶은 또 다른 은유가 그 안에 담겨 있다. 그 은유가 바로 메시지다. 그렇기에 재미만 좇지 말고, 이 메시지를 놓치지 않았으면 싶다. 뭐 재미만 좇아 책을 읽어나가도 문제될 것은 하나도 없지만 말이다.
9편 모두가 좋지만, 그럼에도 몇 편 생각나는 바를 적어본다.
“한때 라면이라는 음식이 있었다.”로 시작하는 <라면의 황제>는 아무것도 아닌 라면인데도 라면 음모론을 제기하는 우스운 현실, 그리고 그 음모론에 동조하여 라면이라는 음식을 금해버린 웃지 못 할 모습을 통해, 오늘 우리의 건강에 대한 지나친 관심 내지, 열풍을 꼬집으며, 아울러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그토록 사랑받는 대중음식을 매도하는 세력에 대해 고발한다.
어느 날 갑자기 도심 상공에 등장해서 아무것도 행하지 않고 사라진 비행물체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각을 보여주고 있는 <지상최대의 쇼>에서는 과연 우리는 타인을 향해 어떤 시각을 가지고 바라보며, 어떤 자세로 대처하는지를 질문하게 한다. 지레 상대를 판단하고 규정함으로 우리 안에 받아들이지 않고 밀어내버리는 모습, 어쩌면 우주이민자의 모습을 통해, 난민이나, 불법체류자들, 그리고 탈북자들을 우리 편에서 규정하고 밀어내 버리는 그런 모습을 고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작가의 말을 빌어본다.
“유사 이래 단 한 번도 다른 생명체나 다른 민족 또는 다른 국가에게 우호적으로 손 내미는 법을 알지 못했던 종족에게 내재된 상상력의 지평선 같은 것 말이다.”(144쪽)
이런 모습은 결국에는 외계인을 도살하여 음식의 재료로 삼게 되는 <경이로운 도시>에서는 극대화된다. 이 이야기는 엽기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런 엽기적인 행동들조차 집단의 행동으로 인해, 정당화되고, 도리어 국민들을 먹여 살린다는 ‘공익’ 앞에서는 도리어 권장되어지기도 하는 그런 모습은 오늘 우리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상대가 외계인에서 내 곁에 있는 누군가 소수자들, 약자들, 주변인들로 바뀌었을 뿐.
이처럼 다소 엉뚱하고, 생뚱맞은 이야기들 안에 재미와 함께 메시지를 녹여 감추는 작가의 그 필력이 예사롭지 않다.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김희선이라는 작가에게 반하게 되었다. 앞으로의 글도 기대하며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