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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별 ㅣ 두바퀴 고학년 책읽기
원유순 지음, 백대승 그림 / 파란자전거 / 2015년 1월
평점 :
『떠돌이별』은 성장동화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주제는 대단히 무겁다. 왜냐하면, 주인공인 림혁의 탈북소년으로서 겪게 되는 안타까운 사연들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국이 자신들의 삶을 품어주지 못하였기에 또 다른 조국을 찾아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한 이들이 새로운 조국에서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하여 또 다른 새 삶의 터전을 찾아 떠돌게 되는 그런 가슴 아픈 이야기이다.
혁과 그의 엄마, 그리고 동생 현지는 함께 신분을 세탁하여 영국으로 입국하게 된다. 그곳에서 난민의 신분을 인정받아 살아가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난민으로서 살아가는 것도 쉽지 않은 삶이다. 처음엔 난민으로 인정받고, 어머니는 과부수당을 받게 됨으로 이제 정착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희망을 품었지만, 조금 더 강화되어진 재심사를 앞두고 림혁의 가정은 또 다시 유랑하는 신세가 된다. 그래서 제목이 『떠돌이별』이다.
또 하나의 조국인 남한으로 목숨을 건 탈출을 했던 그들이 다시 난민의 신세를 자처하며 영국으로 가게 된 이유를 혁의 엄마는 이렇게 설명한다. “피를 나눈 내 형제라구 생각했던 동포들한테 당하믄 그만큼 배신감이 크더란 말이다. 차라리 생판 다르게 생긴 민족한테 설움 받는기 더 낫다 싶어서 이기로 온 기지.”(106쪽)
피를 나눈 같은 민족에게, 같은 형제들에게 서러움을 받는 것보다는 생판 모르는 다른 민족에게 서러움을 받는 것을 택한 이들의 선택, 그리고 그러한 선택으로 내몬 상황이 참 가슴 아프다. 얼마나 새로운 조국, 또 하나의 조국에서 살아감이 힘겨웠으면 난민의 삶을 자청할까? 난민의 삶이 이곳 남한에서의 삶보다 낫다는 의미 아닌가? 누가 이들을 그렇게 몰아세웠을까? 그건 다름아닌 바로 우리들이라는 생각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우리는 동포라는 말을 하곤 한다. 동포는 말 그대로 같은 자궁에서 태어난 형제자매를 가리키는 말이다. 남북한은 한 동포란 말은 이런 의미다. 우린 같은 엄마에게서 태어난 한 형제자매라는 고백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우린 탈북자들을 ‘새터민’이란 단어로 표현하곤 한다.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온 그들, 하지만, 우린 그들을 또 다시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새터를 찾도록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림혁은 탈북민에서 새터민으로, 다시 난민으로, 그리곤 유랑자로 그 신세가 바뀌게 된다. 과연 떠돌이별들인 그네들의 인생을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공간은 없을까?
동화 속에서 림혁은 다리를 전다. 이는 중국인 아빠(두 번째 아빠)의 폭력으로 인한 결과다. 삶이 불안할 때,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이들은 어린이들과 같은 약자들이다. 동화 속의 림혁도, 언제나 자신만만하며 까칠한 영심도, 정서가 불안한 준이도, 한국으로 돌아가기만을 원하는 동생 현지(현지는 엄마의 세 번째 남편인 남한 아빠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동생이다)도 모두 이러한 피해자들다. 그렇기에 이런 난민들, 탈북민들, 고통당하는 아이들을 돌보는 그 돌봄은 사랑의 실천만이 아닌, 정의의 구현이기도 하다.
동화 속에서는 영국이민교회인 할렐루야교회의 사모와 성도들을 통해, 이런 사랑의 실천이 행해진다. 하지만, 그 역시 대단히 안타까운 모습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남한인 이민자들로서 탈북난민들과 자신들은 같지 않다는 생각으로 출발하기 때문이다. 사실 같은 신세가 아닌 것은 상관없다. 어차피 도움이란 보다 더 나은 이들이 약한 이들을 향해 행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도움의 손길을 펼치되, 이를 사랑의 실천이 아닌, 사랑의 적선으로 이해한다. 여전히 자신들은 그네들과 다르다는 생각을 갖는다. 이는 온전한 사랑의 실천이 아니다. 사랑을 실천할 때는 상대의 입장, 도움을 받는 이들의 입장을 공감하며, 고려해 가며 펼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 도리어 도움을 주면서도, 도움 받는 이들의 영혼에 상처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작가는 이런 모습도 우리가 보길 원했을 것이다. 우리의 사랑의 실천이 사실은 적선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것이다.
마음을 무겁게 하고 아프게 하는 동화이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읽고 반드시 생각해봐야 할 주제를 다루고 있다. 과연 탈북민들, 그들에게 조국은 어디인가? 우리는 그네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이며, 우리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일들은 무엇인가? ‘새터민’이란 단어처럼, 이 땅이 그네들의 새 터, 새 땅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여전히 이곳에서 살아감에도 ‘남의 땅’에서 살아가는 아픔을 이제는 더 이상 우리 반쪽들이 겪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의 더 많은 관심과 실천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