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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 -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생명 이야기 ㅣ 아우름 1
최재천 지음 / 샘터사 / 2014년 12월
평점 :
이 책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는 샘터사에서 기획한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인문교양 시리즈 아우름”의 첫 번째 책이다. 저자인 최재천 교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동물행동학의 권위자이며, 많은 저서활동을 하고 있으며, 현재 서천에 있는 국립생태원의 원장으로 있다.
책 제목이 참 좋다.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 우리가 이 문장을 깊이 새기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린 무한경쟁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말하며, 그렇기에 적자생존의 법칙대로 살아야 한다고 믿고 산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에 대해 우리가 오해하는 바가 있음을 말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는 이 적자생존을 최적자생존으로 오해하기에 누군가를 밟고서라도 올라서려고 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적자생존이란 살아남는 자가 승리하는 것이다. 그러니 예를 든다면 도태될만한 최하위가 아니면 살아남게 되는 것이 적자생존이고, 생태계는 이렇게 유지되었다고 말한다. 최적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자들로 이어져온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아무튼 저자는 먼저, 1장에서는 알면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말하는 것이 우리 모든 생명체는 결국에는 하나의 DNA에서 유래하였기에 한 집안임을 말한다. 이 사실을 안다면 우리가 인간이라고 해서 다른 생명체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사랑하게 됨을 말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저자가 말한 유전자복제의 위험성보다 더 위험한 유전자조작의 위험성에 대한 부분은 참 많은 것을 생각게 하는 부분이었다.
아울러 2장.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며”에서는 전 지구를 질량과 개체수로서 지배하고 있는 생명체에 대한 언급이 인상적이었다. 전 지구를 질량에 있어 지배하고 있는 생명체는 바로 꽃을 피우는 현화식물이며, 또한 가장 개체수가 많은 생명체는 다름 아닌 곤충이라고 한다. 이렇게 두 생명체가 지구를 지배하게 된 이면에는 이 둘은 서로를 돕는 관계이기 때문이란다. 이렇게 서로 손을 잡고 있기에 결국 지구의 최강 생명체가 될 수 있었다는 논리이다. 참 마음에 와 닿는 설명이다. 이처럼 서로 손을 잡을 때, 살아남을뿐더러, 더욱 풍성해지게 됨을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 우린 누군가와 손잡고 윈윈하려 하기보다는 여전히 독불장군이 되려하고 있진 않은지. 손잡으려하기보다는 나의 성장을 위한 도구로 누군가를 희생시키려는 마음이 가득 하진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저자는 또한 이런 손잡음은 학문에 있어서도 필요함을 말한다. 이것이 저자가 계속하여 강조하였던 ‘통섭’이다. 통섭이란 인접학문과의 교류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러한 통섭에 가장 좋은 자연과학 학문이 바로 생물학이라고 말한다(3장). 여기에서 저자는 혹 다음세대들 가운데 생물학자를 꿈꾸는 자들을 위해 자신의 전공인 동물행동학이 무엇인지 소개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청년의 방황에 대해 말한다. 물론, 저자는 방황과 방탕은 다름을 엄격하게 구분 짓는다. 자신의 삶에 대해 어린 시절부터 모든 계획이 철저하게 짜여있어 그 시간표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도 물론 나쁘지 않겠지만, 자신이 평생을 가야 할 길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기웃거림을 저자는 ‘아름다운 방황’이라 말한다. 이것 역시 어쩌면 손잡음, 통섭과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겠다.
저자는 이러한 아름다운 방황을 권장하며, 자신의 방황에 대해 4장에서 언급한다. 자신 역시 과학자가 될 것이란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지만, 그럼에도 ‘아름다운 방황’ 끝에 평생 가야할 길을 알게 되고, 그 길을 가게 되었음을 보여줌으로 다음세대들에게 꿈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렇다. 오늘날 우리는 저자의 말처럼 너무나도 전문화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기에 자신의 분야가 아닌 것에는 무지한 전문가 바보들을 만들고 있는 시대에 살아간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다른 분야의 도움 없이 성장할 수 없다. 오히려 그런 편협한 생각은 전문성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더욱 도태할 수밖에 없는 이상한 전문성을 만들뿐이다.
깊은 우물을 파기 위해서 넓게 파는 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기성세대들이 자꾸 편협한 전문성을 강조했다면, 이제 자라나는 다음세대들만은 통섭의 지혜를 깨닫게 되길 소망한다. 아울러 우리 이제는 함께 손잡는 지혜, 함께 가는 지혜가 있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