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잔의 시놉시스
이석규 지음 / 해드림출판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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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규 시인의 첫 시집, 『빈 잔의 시놉시스』에는 이런 수식이 붙어 있다. “타고난 노스탤지어, 낙타의 시인”이라고 말이다.

 

“타고난 노스탤지어”란 말은 그의 많은 시가 그리움에 대해 노래하기에 이런 수식어가 쉽게 이해된다. 특히, 시집의 제2부의 제목 자체가 “그리움”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시인의 이러한 그리움은 어머니를 향한 것으로 포문을 연다.

 

쓸쓸쓸 / 울 어머니 길쌈하는 소리가 들린다 / 허리를 펴는 소리도 들린다 /

그 소리 뒤에 주름진 이마도 보인다 / 그러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

쓸쓸쓸 / 매미가 울면 나의 불효가 쏟아진다 /

맨날 투정해도 그저 조용히 날 감싸는 어머니 / 치마 끄는 소리만 크다 //

더위가 한창인 여름에 / 매미는 어머니 속에 있고 / 매미는 내 속에도 있어 //

쓸쓸쓸 / 매미가 울면 울 어머니 / 막 보고 싶다

< 매미 > 전문

 

누구나 그렇겠지만, 우리의 근원적 그리움은 어머니가 아닐까 싶다. 어머니야말로 생존여부를 떠나 내 영혼의 영원한 고향이기에 그렇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 어머니를 떠올리면, 언제나 불효만 했음을 깨닫게 되어 먹먹해진다. 대학시절, 등록금을 내야할 때가 되면, 언제나 어머니는 친지에게 돈을 꾸곤 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할지라도 돈을 꾼다는 것은 자존심을 버리는 행위다. 그 옛날 4년제 대학을 나오시고, 처녀 시절 미니스커트를 입으시던 신여성인 어머니(올해로 77세가 되셨다)는 자녀의 미래를 생각하며, 자존심도 버리고 돈을 꾸러 다니시곤 했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학업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시절의 불효가 떠올라 어머니를 떠올리면 언제나 죄송하며, 마음이 먹먹해지곤 한다.

 

시인 역시 그랬나 보다. 매미가 한참 울던 무더위 속 여름에도 길쌈하던 어머니,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던 어머니의 허리 펴는 소리는 유달리 크게 들렸을 것이다. 우리네 어머니들의 허리 펴는 소리는 모두 ‘아이구 아이구’라는 소리와 함께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시인은 매미가 ‘쓸쓸쓸’ 울 때마다 그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 그 수고로움을 떠올리며 그리움에 몸부림친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수식어, ‘낙타의 시인’은 무엇일까? 물론 시인의 의도가 어떨지 모르지만, 이미 시는 시를 잉태한 시인의 손을 떠났다. 그리고 이젠 그 시를 읽고 감상하는 독자의 것이 되었다. 그렇기에 시인의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독자의 시선으로 시를 바라보며 해석해 본다.

 

시인이 유독 많이 노래하는 것은 파도(바다를 포함), 시, 그리고 낙타다. 왜 이토록 시인은 낙타에 집착할까? 낙타는 시인에게 무엇이기에? 아마도 낙타는 시인에게 있어 욕망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어쩌지요 길이 트여 덜컥 우리 만나면 / 낙타의 등에 솟은 혹처럼 /

나의 오욕들이 들통날까봐 가슴 조이고 있으니

< 봄길 > 일부

 

만약에 당신이 내게 오신다면 / 이런 새벽시장으로 오실 것 같아서 /

당신이 그리운 날엔 언제나 눈깔을 부리부리 굴리며 /

등에 큰 혹 단 채로 / 동대문 새벽시장에 가 있을 것입니다.

< 서울 낙타 > 일부

 

두 개의 시 모두에서 시인은 그리움을 노래한다. 그 그리움이 사랑하는 이를 향한 그리움일 수도 있고, 오지 않는 봄을 향한 그리움일수도 있다. 무엇이든 만남을 향한 그리움을 품는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그 만남의 그리움은 인간적 욕망으로도 표현된다. 그렇기에 낙타의 혹을 말한다. 그리움으로 인해 너무나도 만나고 싶지만, 정작 만났을 때, 자신의 실체, 그 욕망이 드러날까 가슴 조인다. 그 욕망이 바로 낙타로 상징된다. <서울 낙타>에서도 그리움과 미망이 바로 이런 등의 큰 혹으로 연결된다.

 

그렇다. 누구나 이러한 혹 하나쯤 달고 살고 있지 않을까? 아니, 수많은 욕망의 혹들이 달린 것도 모르고 살고 있는 모습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아울러 이러한 욕망은 시를 향한 욕망으로도 노래되고 있지 않나 여겨진다. 시인에게 시는 그리움이며, 또 한편으로는 욕망의 혹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인은 낙타를 이처럼 욕망으로만 보지 않는다. 아니 궁극적으로 시인에게 있어 낙타는 치열한 삶을 향한 투쟁의 수단, 급하지는 않지만 삶의 모든 역경을 이겨내는 모습이 바로 낙타의 모습이 아닐까 여겨진다.

 

좋아한다고 빨리 가면 발병 난다 / 낙타로 가라 /

고비를 넘어 / 어깨에 손을 얹고 같이 걸을 때까지는 //

모래바람이 끝없이 불면 / 길 위에 그 이름을 펼치며 가라 //

좋아하는 마음의 길은 / 본디 사막이니까 /

사막에선 선인장으로 굴러가라 / 굴러서 사랑 그대에게로 가라 //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 내가 바로 사막인 까닥이다 //

어서 빨리 가야 하는데 / 황사까지 끼어 앞을 가릴 때는 /

말없이 흩어지는 구름으로 흩어져서 가라 / 흘러서 외롭게 가라.

< 사랑 > 전문

 

아까부터 당신을 기다리고 있지요 / 아무리 날씨가 변덕스러워도 우리는 /

마음의 울타리를 높여 절망을 막아야 해요 / 낙타가 되어야 해야

< 봄길 > 일부

 

그렇다. 우리 삶 앞에 어떤 어려움이 놓여 있다 할지라도, 비록 그 어려움이 모든 생명을 앗아가는 사막과 같은 환경이라 할지라도, 그 사막을 뚫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낙타와 같이 나아가야 한다. 그렇기에 시인에게 있어 낙타는 삶의 투쟁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시집의 서시로 돌아가면 낙타의 의미가 더욱 선명해지지 않을까 여겨진다.

 

어디에 있든지 /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지 /

그대는 불꽃들이 들어찬 가슴 열고 / 나와야 한다 //

짙푸른 바다를 사모하는 강물처럼 / 머뭇거리지 말아야 한다 //

어서 / 묶여있는 배의 돛을 세워야 한다 //

< 서시 > 일부

 

우리 시인의 외침처럼, 사막과 같은 삶 속에서 한 마리 낙타가 되어 나아가자. 망망한 인생의 바다 속에서도 돛을 올리고 나아가자. 머뭇거리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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