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의 시간
도종환 지음, 공광규 외 엮음 / 실천문학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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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노래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노래할까? 물론 많은 노래의 소재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 시인이라면 의당 노래해야 할 소재는 바로 시대적 아픔이 아닐까? 특히, 말의 통로가 닫혀 있던 시대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시인의 붓끝은 부패한 권력을 향해야 함이 마땅하다. 그럼으로 붓이 칼보다 강함을 보여줌이 시인의 역할이 아닐까?

 

도종환 시인의 시선집, 『밀물의 시간』을 읽고 묵상하며, 오랜만에 시대적 아픔을 노래하던 시인 고뇌를 느낄 수 있어 시간 여행을 하는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어쩌면 지금 이 시대 역시 이러한 시인의 역할이 강조되어질 시대는 아닌지 반문하게 된다.

 

『밀물의 시간』은 도종환 시인의 지나온 족적들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시선집이 아닌가 여겨진다. 첫 시집부터 최근의 시집까지 그 안의 주옥같은 시들이 담겨 있다.

 

도종환 시인의 시는 유명한 시들이 참 많다. 그리고 많은 시들에 시대적 아픔과 시인의 고뇌와 저항, 아이들을 향한 시인의 진실한 마음, 시인이 해쳐나간 삶의 무게가 담겨 있다. 특히, 사랑하는 아내로 인한 아픔들 역시 아름다운 시로 되살아나고 있다. 이러한 삶의 진정성이 그의 시에 힘을 싣고 있지 않나 여겨진다.

 

물론, 시인은 본인의 구체적 삶의 정황 가운데 시를 잉태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독자들이 시를 느끼고 해석해 나가는 것 역시 시인의 정황이 아닌 독자들의 정황의 지배를 받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렇기에 참 오랜만에 읽은 시대적 불의를 향한 저항의 내용들이 감회가 새로우면서도 유독 담쟁이란 시가 오늘 나에게는 가장 마음에 와 닿는다.

 

저것은 벽 /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 그때 /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

담쟁이잎 하나는 담쟁이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 담쟁이 > 전문

 

이 시가 발표된 해가 1993년이니까, 어쩌면 이 시는 시인이 몸담았던 전교조의 당시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잉태된 작품이 아닐까 여겨진다. 그렇기에 시인의 저항의식이 담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결국 연대함을 통해, 절망의 벽을 넘고야 말겠다는 희망의 투영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이 시가 독자인 나에게 유독 가슴을 울리는 이유는 인생의 후반부를 준비하는 나의 지금 상황에 대입되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내가 꿈꾸는 일들이 마치 절망의 벽처럼, 힘겨운 장애물이라 할지라도 결국엔 말없이 그 벽을 오르게 될 꿈을 이 시를 묵상하며 다시 한 번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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