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재일교포 김상중의 소설 『마음』은 죽음에 대한 작가의 성찰을 잘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 그리고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수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간 사건, 이러한 죽음 앞에 죽음의 의미는 무엇이고,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작가는 찾아간다.

 

그 방식은 절친의 죽음 앞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대학생 나오히로 군이 꽤나 인지도 높은 대학교수 김상중(소설 속에서의 주인공 역시 김상중이다)에게 직접 전해준 편지 상담 요청으로 인해, 여기에 김상중이 대답하며, 서로 이메일을 주고받는 가운데, 죽음에 대해 풀어나간다. 이러한 과정 가운데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나게 되고, 그 엄청난 사건 이후 나오히로 군은 “라이프 세이빙” 봉사활동을 하게 되는데, 바다에서 시신들을 건져 내는 가운데 또 다른 정신적 충격과 죽음에 대한 또 다른 견해를 갖게 된다. 아울러, 나오히로는 자신이 활동하는 연극부의 공연, “친화력”이라는 작품을 통해, 죽음에 대한 또 다른 접근을 하게 된다.

 

절친의 죽음, 그리고 상상키 어려운 엄청난 대규모 자연재해를 통한 무작위 다수의 죽음, 그리고 연극을 통해, 괴테의 『친화력』에 대한 재해석. 이런 과정들을 통해, 저자는 상중과 나오히로 군의 주고 받는 메일을 통해, 죽음 그리고 삶에 대한 성찰을 이어간다.

 

이 소설에서는 괴테의 『친화력』이 큰 역할을 감당한다. 극중의 상중은 『친화력』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주인공 네 사람 간의 사랑과 애증보다는 무분별한 ‘개발’에 의한 비극적 삶에 있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저자가 『마음』을 통해 강조하는 바가 명확하다. 그것은 바로 동일본대지진을 통해 드러난 ‘개발’의 맹점에 대한 고발이다. 이것이 바로 삶과 죽음이라는 주요 주제 뒤편에 감춰진 또 하나의 메시지이다.

 

동일본대지진의 참사를 통해, 세계는 원자력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린 이런 세계적 흐름과 반대되게 정부차원에서 원자력 개발을 강행하며, 이로 인해 지역주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고, 국민들의 ‘마음’을 서로 나뉘게 하고 있다. 자연의 엄청난 경고 앞에서도 우리가 배우지 못한다면, 무엇을 통해 배울 수 있을까? 괴테의 『친화력』을 통해 감춰진 경고를 들을 수 있을까? 아님, 이 책 『마음』을 통해, 작가의 마음을 엿볼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

 

극중 연극 대사를 통한 질문, “도대체 우리들, 어디서 잘못된 걸까?” 이 질문의 답을 찾는 노력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저자가 죽음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결론 격은 청년 나오히로 군의 말을 통해 밝혀진다. 죽음은 결국 삶을 빛나게 해준다고 말이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죽음을 곱씹어야 할 이유이다. 우리가 죽음을 이야기하고 죽음을 고민하는 이유는 죽음 앞에 정의도 없고, 죽음은 정당한 이유도 없이 진행되기에 허무함을 이야기하고자 함이 아니다. 신의 부당함(이것을 신학적으로는 신정론이라고 말한다)을 고발하고자 함도 아니다.

 

물론,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기에, 그리고 누군가는 맑고 깨끗하고 바르게 살아감에도 부당한 죽음을 당할 수도 있기에, 죽음 앞의 우리 인생은 허무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허무함을 말한다 할지라도, 우린 죽음 앞에 인생은 허무하기에 한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한번 주어지는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며, 행복함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며, 긍정적 인생을 살아야 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렇기에 죽음을 통해, 드러나는 허무주의는 ‘부정적 허무주의’가 아닌 되려 ‘긍정적 허무주의’를 말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 소설, 『마음』을 통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죽음에 대한 성찰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으며, 누구도 그 시간이 정해진 것이 아니기에, 언제일지 모를 나의 끝 날을 예비하며,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길 촉구하는 것. 이것이 죽음 앞에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가 아닐까?

 

 

또한 대중매체들을 통한 죽음의 접근에 대해서도 저자의 도발이 느껴진다. 죽음의 참혹함, 직접적인 그 슬픔의 울림은 외면한 채, 그저 통계적이고 무미건조한 숫자상의 죽음에 대한 저자의 문제제기가 마음에 와 닿는다. 우린 올해 “세월호”라는 엄청난 슬픔을 경험하였다. “세월호” 사건 앞에서 방송매체들의 문제점이 얼마나 많이 드러났는가? 게다가, 그 슬픔을 우린 어떻게 기억하나? 우리 역시 그저 숫자상의 죽음, 하나의 사건으로만 기억하는 것은 아닐까? 죽음에 대한, 그리고 그 죽음으로 인해 삶이 송두리째 뽑혀버린 남은 자들을 향한 애도의 마음도 외경의 마음도 없다. 여전히 자신의 정치적 소견에 의해 비인격적인 비방과 섣부른 이용만이 있을 뿐 아닌가! 어느 누구도 엄청난 죽음의 사건에 책임지지 않는 사회, 이 사회는 과연, 어떤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괴물인지 궁금하다.

 

『마음』이란 이 소설, 표지 디자인이 썩 손이 가는 디자인은 아니다. 하지만, 그 알맹이는 참 좋다. 죽음에 대한 작가의 성찰에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옥에 티가 있는데, 그건 나오히로 군의 컴퓨터가 고장 나서, 친구의 컴퓨터를 통해, 친구의 메일계정으로 이메일을 보낸다는 설정인데, 이는 작가의 착각에 의한 설정이 아닌가 싶다. 이메일계정이란 것이 자신의 컴퓨터를 통해서만 열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어느 컴퓨터를 통해서도 자신의 메일계정을 사용할 수 있음을 작가가 몰랐던 것일까? 이런 설정이 옥에 티라면 티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작가의 성찰을 깎아 내리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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