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간들 - 제1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최지월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상실의 시간들』은 제1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으로 죽음에 대한 저자의 통찰력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로 살던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 그 뒤에 남겨진 병들었지만, 고집스러운 퇴역 군인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를 돌볼 책임을 맡게 된 연애소설을 쓰는 둘째 딸과 아버지간의 갈등. 화자인 둘째 딸은 엄마의 죽음을 추억하고, 또 한편 남겨진 아버지와의 갈등관계 속에서 죽음에 대해 성찰하며, 죽음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엄마의 죽음이라는 모티브를 통해, 이 죽음을 바라보고, 이 죽음을 애도하고 추억하는 방식에 대한 저자의 관점이 둘째딸을 통해 펼쳐진다.

 

죽은 자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처리할 수 없기에 남겨진 자들이 고인의 죽음에 대해 행정적으로 처리해야 함을 고인을 다시 한 번 죽여야만 하는 것을 보는 관점이 참신하다.

 

아울러, 죽음 이후에 남겨진 자들의 현실적인 삶의 고민들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평생 아내가 모든 것을 챙겨줬던 아버지의 혼자됨. 그 빈자리. 하지만, 애써 아내의 죽음을 거부하고 부정하며 도피하며 의연한 체 하려는 남성성의 허울도 고발한다.

 

또한 엄마의 죽음을 밀접하게 둘러싸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그 죽음과는 동떨어져 있는 생활인들(상조회, 구급차 운전자, 간호사 등)에 대한 모습도 고발하고 있다.

 

저자는 또한 떠난 자를 애도하는 모습 가운데 보이는 모순을 고발하기도 한다. 상가에서 애도하는 모습. 어느 누구도 진심으로 슬퍼하지 않고, 종교인들은 단순한 종교적 행위로, 친지들은 품앗이, 또는 대인관계에서의 도리를 다함으로. 여기에 더하여 헛된 호기심의 모습까지. 게다가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고인을 애도함이 불합리하다는 저자의 관점은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요식적 행위에 대해 고발한다. 이는 우리를 반성케 하고 돌아보게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너무나도 편협한 생각이기도 하다. 덴도 아라타의 『애도하는 사람』을 보면, 자신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죽음이지만, 모든 죽음의 현장을 찾아다니며, 그 사람에 대해 묻고, 진심으로 애도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한 애도함이 왜 없겠나? 아니 관계없는 죽음까지는 차치하고라도 자신과 관계있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 모든 이들이 형식적으로 접하는 것은 아니다. 왜 마음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애통함이 죽음의 현장에 왜 없겠는가? 저자가 고발하고자 하는 의도는 알겠으나, 그럼에도 편향적인 견해임이 아쉽다.

 

죽음을 애도하는 종교적 갈등도 보여준다. 물론, 엄마는 기독교인이다. 감리교 권사, 그렇기에 당시 종교예식은 기독교식으로 치러졌다. 하지만, 장례 뒤의 애도의 방식은 어떠해야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감리교 권사인 아버지, 천주교인 언니, 무종교인 여동생, 그리고 불교인 주인공. 이 사이에서 어떤 방식으로 애도해야 하나?

 

여기에서 저자의 견해는 우리 전통 방식을 찾아가고 있다. 하지만, 무엇이 전통인가? 그것을 과연 한국적이라 말할 수 있나? 그것 역시 유교와 불교의 습합이 아닐까? 여기에서 저자의 모순이 드러난다. 죽음에 대한 저자의 연구와 고민이 녹아들어있긴 하지만, 저자의 견해만이 옳다는 것 역시 독단 아닐까?

 

게다가 죽음을 둘러싼 모순 가운데 가장 적나라하게 고발되고 있는 것은 바로 기독교인들의 모습이다. 기본적으로 저자는 기독교를 혐오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가운데, 몇 가지 불편함이 있었다.

 

첫째, 저자가 교회를 고발하는 내용들 가운데 많은 부분이 실제 그렇기에 부끄러운 불편함이다. 이 불편함은 마땅히 감당해야 할 불편함이요, 한 사람의 기독교인으로서 새기고 반성해야 할 부분으로 불편케 해 줌이 고맙다.

 

두 번째 불편함은 그럼에도 그 모습이 모든 교인들의 모습은 분명 아니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그 모습을 일반화시켰고, 그로 인해, 모든 사람들은 저자의 수준 이하로 뭉개졌다는 점이다. 자신의 생각 이하의 모습으로 뭉개 버렸다. 한 사람의 기독교인으로서 모든 기독교인을 그처럼 폄하해버리는 저자의 경솔함이 불편하였다.

 

죽음에 대해 냉철하고 바른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자신이 생각하는 것 외에는 폄하해 버리는 모습들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셋째, 끊임없이 저자는 둘째 딸을 통해, 저자가 생각하는 견해와 다른 견해에 대해서 반박한다. 그들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논지이다. 하지만, 왜 자신의 견해에 대해서는 반성함을 보이지 않는지. 왜 둘째 딸은 죽은 엄마에 대해, 남겨진 고집쟁이 아버지에 대해, 그리고 호주에 있는 언니에 대해서도 냉철하게 판단하는데, 둘째 딸 자신에 대해서는 성찰함이 없는지. 이 부분 역시 불편한 부분이었다. 저자는 자신에 대한 성찰은 철저하게 감추고 있다는 느낌이 불편했다.

 

또 하나 학창시절 이야기를 상당히 긴 분량으로 다루고 있는데, 이 부분이 과연 왜 필요한지 의문이 든다. 그 고백이 작가의 경험담을 통해, 자신의 학창시절이 “상실의 시간들”이었다고 말하고자 하는 건지, 자신을 성찰하려는 의도였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을 성찰하는 회상이라기보다는 학교의 부조리, 교사의 부조리에 대한 고발의 시간이다. 물론, 학교를 향한, 그리고 교사를 향한 저자의 견해에는 본인 역시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나 길게 그 부분을 회상해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학창 시절의 회상 모티브를 가지고 다음 기회에 다른 작품으로 우리에게 찾아왔더라면 좋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과 반성을 하게 한 작품이기에 저자에게 고맙다. 하지만, 많은 아쉬움과 불편함도 함께 안겨주고 있음이 솔직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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