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와 레몽의 집 - 알자스 작은 마을에서 맛본 조금 더 특별한 프랑스
신이현 지음 / 이야기가있는집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루시와 레몽의 집』은 저자의 시댁 여행기라고 말할 수 있겠다. 저자가 남편과 함께 파리에서 살 때, 그곳에서 차로 6시간 가량 이동해야 하는 프랑스의 변두리 마을, 알자스를 방문한 이야기이다. 물론 한 번 방문은 아니고, 겨울,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다시 일순하는 기간 동안 수차례 방문한 이야기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성장한 저자와 시댁 어른들 간의 문화적 차이가 줄어들며, 점진적으로 참 가정공동체를 이루어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행서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여타 여행서적처럼 과장됨은 없다. 마치 자신의 고향 마을을 찾아 고향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처럼 일상의 소소한 재미들을 담백한 뉘앙스로 써내려간다.

 

책을 통해 발견되는 알자스는 풍광은 이국적임에도, 마치 우리네 시골 마을의 느낌을 주기도 하다. 마을공동체성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서로의 사정을 잘 알고 있으며, 언제나 시시콜콜한 것까지 관심을 갖는다. 예전 우리네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알자스 주민들 역시 대부분 그곳에서 자라고 죽어간다. 여전히 인심이 살아 있다. 무엇보다 먹거리의 풍성함이 있다. 이런 모습들을 통해, 그리운 사람 향기가 물씬 풍겨내는 책이다.

 

마을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시댁어른들의 친지들이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지며, 나갔다 또 들어와 한참을 이야기하고, 또 인사를 하고 나갔다 또 들어와 웃음을 나누는 장면을 보며, 자연스레 미소를 짓게 된다. 우리네 인심 역시 이러하지 않은가! 현관에서 인사하고, 엘리베이터 함께 타고 내려와 인사하고, 차에 타서 인사하고, 또 창문 내리고 인사하고... 이런 정이 느껴지는 모습들. 알자스와 우리네 모습이 별반 다르진 않다.

 

이 책은 유독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이는 이곳 알자스가 프랑스임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들내외를 반겨 맞는 노부부의 마음 씀이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네 할머니들도 손주들이 온다면, 이것저것 평소 먹지 않던 음식들까지 장만하여 대접하였던 것처럼. 그래서 이 책은 알자스 지역의 특별한 맛이 가득하다. 그렇기에 이 책은 공복에 보면 안 된다. 나 역시 깊은 밤에 이 책을 보다 결국 책을 덮고 말았다. 참을 수 없는 식탐이 일어나 애써 하고 있는 몸매관리에 구멍이 뚫릴까 걱정되어서. 하지만, 반대로 저자가 전하는 알자스의 여러 맛을 더 확실히 느껴보고 싶다면, 공복에 읽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온통 군침을 흘리게 될 테니 말이다. 선택은 여러분들의 몫이다.

 

또한 포도주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맨 정신에는 끝까지 읽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느샌가 여러분들 손엔 포도주 잔이 들려 있을 테니. 포도주를 전혀 마시지 않는 나 역시 알자스의 포도주에 혀끝을 적셔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이니...

 

무엇보다 부럽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건, 알자스에는 추억이 살아 있다는 점이다. 시아버지 레몽이 어렸을 때 살던 집, 그리고 그 마을이 지금도 그대로 있기에 며느리에게 보여주며, 옛 추억을 꺼내놓기도 한다. 할아버지의 박물관(다락)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사용하던 물건들이 지금도 보존되어 있으며, 손주가 사용하기도 한다. 옛것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은 단순히 낙후되었다는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도리어 그 안의 추억이 스토리텔링으로 살아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추억이 살아 있다는 것은 한 편으로는 그 존재가 소멸되지 않고 살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금은 레몽의 곁을 떠난 아내, 루시의 요리책이 레몽을 통해, 다시 레몽의 삶 속에서 루시의 손맛으로 살아나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온 가족이 함께 모여,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담가 두셨던 포도주를 마신다는 것, 얼마나 멋진 모습인가? 그 포도주를 마실 때마다 이미 곁을 떠나신 분이지만 그분을 추억할 수 있기에, 그분은 자신이 담가둔 포도주를 통해, 후손들에게서 다시 살아난다.

 

이처럼 전통과 추억, 인심, 무엇보다 음식의 맛이 살아 있는 알자스. 언젠가는 그곳에서 아무런 관계없지만, 나 역시 온 가족과 함께 느긋한 쉼의 시간을 갖게 될 날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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