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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왔어 우리 딸 - 나는 이렇게 은재아빠가 되었다
서효인 지음 / 난다 / 2014년 7월
평점 :
은재는 작가의 딸이다. 은재는 다운 증후군이라는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은재는 장애아이다. 『잘 왔어 우리 딸』은 다운 증후군이라는 장애를 갖고 태어난 딸, 그 딸로 인해 비로소 아빠가 되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딸을 잉태함에서부터 딸의 출생을 기다리는 과정, 딸의 출생과 함께 시작된 슬픔, 슬픔 뒤의 행복을 찾아가는 길을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며, 먹먹함에 짓눌린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축하 받아 마땅한 출생이 축하받지 못하는 모습이다. 아이의 잘못은 없다. 산모의 잘못도 없다. 아빠 역시 마찬가지. 그럼에도 어느 누구도 축하받지 못함에 마음 한 켠이 아려온다.
나도 두 아이의 아빠다. 늦둥이 둘째는 태어난 지 아직 채 한 달도 되지 않았다. 아이를 갖게 되면, 가장 큰 기도의 제목은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는 것이다. 이는 여느 부모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건강하게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안도하고, 감사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아이가 장애를 갖고 태어났음을 알게 되면, 감사할 자리에 걱정과 원망, 슬픔이 자리하게 된다. 뿐 아니라, 자랑하고 싶은 아이에서 감추고 싶은 아이가 되어 버린다. 여기에 더하여 부모의 뭔가 알지 못할 잘못으로 인해,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난 것은 아닌지 자책하게도 된다.
저자 역시 마찬가지. 축복 가운데 태어나야 할 아이가 장애를 가졌음에 자신의 잘못 때문은 아닐지 반성한다. 어린 시절 장애우를 향한 조롱과 무관심의 대가는 아닌 지 말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첫 아이의 출생을 기다렸을 부모, 온갖 희망의 풍선들을 쏘아 올렸을 부모, 첫 아이에 대한 부푼 기대를 설계했을 부모. 하지만, 장애를 가진 아이의 출생으로 이 모든 것들이 사라져 버린다.
자녀를 기르며, 자녀를 향한 부모의 기대가 조금씩 채워질 때, 부모는 행복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기대가 무너진 저자에게 찾아 온 것은 슬픔. 하지만, 그 슬픔 뒤, 기대감이 무너진 자리에, 아이를 있는 그대로 맞이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딸의 존재 자체만으로 저자는 행복을 찾아간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기대, 부모의 기도는 마땅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 역시 어쩌면 부모의 기준에서, 부모의 눈으로 바라보는 기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 기대는 자칫 자녀를 꼭두각시로 만들 위험성을 내포하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는 저자의 눈이 아닌 은재의 눈으로 은재를 발견하게 된다. 이것 역시, 어쩌면 슬픔 속에서 허락되는 예기치 못한 축복이 아닐까?
『잘 왔어 우리 딸』은 먹먹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먹먹함 뒤편에 아름다움이 감춰져 있다. 슬픔 가득한 글이지만, 역설적으로 저자의 글맛은 달다. 슬픔의 맛이라기보다는 행복의 맛이다. 딸 은재를 향한 아버지의 참 사랑, 아름다운 사랑이 버무려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은재의 앞길을 축복해 본다.
방금 아이가 완행열차를 탔다. 꽤 오래 달릴 것이다. 나와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창문을 보며 가야 할 것이다. p.92
은재야, 아프니? 나도 아프다. 그러고 보니 3월하고도 중순이 되었다. 창밖은 이미 봄이다. 은재의 옆구리에 보송보송한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상처가 깨끗하게 소독되는 중이다. p.172
나는 머릿속에 그렸던 그래프를 벗겨내 찢어버린다. 아이가 어디에 있든, 거기가 어디든, 유일하게 반짝이는 하나의 점이다. 무한한 면에 수많은 별이 반짝인다. 별들에게는 상하와 고저가 없다. 그곳은 수학책 그래프의 면이 아니다. 상상 밖의 아득한 우주다. 거기 어디에선가 아이들이 제 빛을 내고 있다.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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