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붕대 스타킹 반올림 31
김하은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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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무엇보다 화란 감정이 치밀어 오른다. 선혜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괴물들 때문이다.

 

첫 번째 괴물은 욕망에 충실한 자들이다. 이들은 꽃다운 아이를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짓밟으려는 자들이다. 저자는 안치환의 노래로 유명한 정지원 시인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통해,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가장 위험하고 악한 괴물이 될 수 있음을 고발한다. 이들, 욕망에 사로잡힌 자들의 모습이 딸을 가진 나의 마음에 분노를 지핀다. 하지만, 또 한편으론 분노를 접고 질문하게 된다. 나 역시 욕망에 충실한 괴물은 아닌지.

 

두 번째 괴물은 선혜의 가장 가까운 사람인 엄마다. 엄마의 모든 고생은 딸 선혜를 위해서이다. 억척스럽게 슈퍼를 꾸려나가는 엄마이지만, 딸의 학업을 위해선 어느 것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진정 딸을 위하는 것일까? 혹 자신의 기대, 자신의 만족, 자신의 행복을 위해, 딸을 옥죄는 것은 아닐까? 딸을 위한다는 허울 속에 감춰진 엄마의 욕망으로 인해, 선혜는 꼭두각시 인형으로 전락한다. 무엇보다 엄마는 딸의 아픔을 직시하지 않는다. 아무 일도 없었다며, 애써 딸의 아픔을 덮어버린다. 이러한 엄마의 어긋난 사랑은 또 하나의 괴물이 되어 선혜를 공격하며, 선혜가 얼음 붕대 스타킹 속에 숨는 일에 동조한다.

 

세 번째 괴물은 남의 불행조차 자신들의 가십거리로 만드는 자들이다. 친구 수겸이 그 역할을 한다. 언제나 소문을 물고 다니는 아이. 그 소문을 전하는 자신과 듣는 친구들이 즐거워한다. 물론, 이 아이 수겸의 행동은 악의는 없다. 하지만, 그 호기심은 결코 선하지 않다. 도리어 악마적 호기심이다. 그 호기심으로 인해, 누군가는 견딜 수 없는 압박을 받고 고통당하며 막다른 곳으로 내몰리기 때문이다.

 

네 번째 괴물은 감춰진 괴물이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무관심한 자들이다. 이들은 오로지 자신의 일에만 전념한다. 고시텔 안에 틀어박혀 자신의 꿈(어쩌면 욕망일지도)을 향해 전진하며, 주변의 아픔에는 무관심한 자들이다. 설령 불의가 행해짐을 보면서도 침묵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피해자에게 직접적인 해를 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들이 어쩌면 가장 무서운 괴물일지도 모른다. 이들의 방관, 침묵, 무관심이 있기에 공터는 더럽고 무서운 범죄의 현장이 되는 것 아닐까?

 

이처럼 수많은 괴물들로 인해, 주인공 선혜는 점차 검정 스타킹 속으로 숨게 된다. 그리고 그의 몸과 마음은 점차 얼어간다. 아니 영혼까지도 말이다.

 

하지만, 이 얼음 스타킹을 깨뜨리고, 선혜가 다시 회복될 수 있는 것, 그건 여전히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선혜를 향해, 관심을 가져주고, 작은 돌봄의 손길을 펼치는 현이 언니. 친구를 향한 사랑과 연민의 마음으로 선혜를 품어주는 지애. 그리고 초등학교시절부터 한결같은 사랑의 마음으로 은근하게 선혜를 위해주는 창식. 이들의 사랑과 관심, 격려를 통해 선혜를 감싼 “얼음 붕대 스타킹”은 깨져나간다.

 

그리고 지금 당장은 노란 수선화로 활짝 피진 못한다 할지라도, 알뿌리 속에서 때를 기다리는 자리로 돌아가 활짝 피게 될 날을 준비하게 된다.

 

이 땅의 다음세대들, 청소년들 역시 지금 당장은 흙속에 묻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의 알뿌리의 시간을 잘 견뎌냄으로 결국엔 노란 꽃으로 아름답게 피어날 그날을 소망해 본다.

 

하지만, 다음세대들의 알뿌리의 시간을 당연한 것으로 방치해선 안 될 것이다. 그들이 싹을 잘 틔울 수 있도록 보다 더 좋은 토양을 마련해 주는 것이 우리 기성세대들의 의무이고 몫이 아닐까? 이 땅의 다음세대들이 힘겨운 시간을 딛고, 활짝 피어나게 되길, 그리고 그들 모두가 서로를 향해 꽃보다 아름다운 인생들이 되길, 이 땅의 괴물들조차 변하여 꽃으로 피어나게 되길 소망해 본다.

나는 줄에 매달린 꼭두각시 인형이었다. 그 줄을 조정하는 건 엄마였고 나는 그 줄에 매달려 이리저리 오가는 생각없는 바보 같았다. 학교, 고시텔, 모든 것이 엄마 작전대로였다. 엄마는 그걸로 내 인생이 활짝 필 거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점점 더 쪼그라들고 초라해졌다. p.65

내 목표는 내 몸을 친친 감고 있는 얼음덩어리를 녹이고 깨부수는 것이다. 어둠을 물리치고 빛으로 한 발 내딛는 것. 그것 말고 다른 목표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p.124

열일곱, 키와 마음이 자라는 나이라는데 우리 마음은 자랄 틈이 없었다. 공부 때문에 모든 걸 포기해야 하는 우리들에게 사랑도 가족애도 뒷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니, 나는 목이 말랐다.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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