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뼈도 살아날 수 있다
전병욱 지음 / 나침반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본 서적은 교회성장의 대표적 선두주자로 알려지고 있는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이 책이 우리에게 많은 면을 깨우치고 있음이 사실이다. 먼저, 종교지도자들이 어떤 자세로 자신의 목회를 감당해야 할 것인가를 반성케 한다. 또한 지도자로서의 열정을 회복하도록 자극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그런 면에 있어 저자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많으며, 본서가 공헌하는 바는 크다고 본다.

하지만, 본서가 가지고 있는 단점 역시 그 이상으로 많은 듯 하다.

우선, 그의 확언적인 문체를 들 수 있다. 자신과 신학적 노선이 다른 목회자들이나, 자신과 같은 방법이 아닌 목회자들을 저주받을 자라고까지 확언하는 것은 저자의 미숙함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본 서평을 쓰는 본인이나 또는 저자와는 다른 신학적 노선에 서 있는 많은 사람들 역시 저자를 향해 그가 했던 질책들과 용어를 사용해서 말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저자는 '성장'이란 단어보다는 '부흥'이란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본인은 '부흥'이란 말보다는 오히려 '성장'이란 단어사용이 옳을 듯 하다. 부흥이란 저자가 말하듯이 어떤 조직이나 구성원 수의 비약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자세를 가리키는 것이다. 저자는 '초대교회는 성장한 것이 아니라 부흥했다'고 말하는데, 사실 초대교회는 부흥했기에 성장한 것이다. 다시 말해 초대교회는 그들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섰기에 외적으로 성장했던 것이라는 말이다. 물론, 저자의 주위에 있었던 그러한 성장이 부흥 없이 이루어질리 없겠지만, 이를 구분하여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또한 저자는 '십자가는 생명의 문제입니다(85쪽)'라고 말하며, 뒤이어 잘못된 축복의 문제를 다루며 이를 기복이라 말한다. 이러한 주장은 옳다. 하지만, 십자가가 생명인 것은 그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의 삶이 전재되어져야 함이 진리이다. 예수의 현실적인 삶이 없이 그저 막연한 복음(십자가)으로 인한 구원만 강조하는 저자의 메시지 역시 하나의 기복에 그침을 저자는 놓치고 있다. 이러한 저자의 태도는 인간의 옷을 입고 우리 곁에 오신 예수를 믿는 자세라기보다는 바울이 고백하고 있는, 다시 말해 바울이 이해한 예수를 믿는 자세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조금 진보적인 신학자들이나 똑똑하다는 젊은 목회자들은......'실천'을 강조한다. '현실'을 강조한다. '프락시스 없는 도그마는 의미 없다'고 부르짖는다. 성경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무식의 소치다! 체험 없는 '책상 신학'의 더러운 산물이다. 로마서, 갈라디어서......를 보라. 그 강조점이 어떠한가?......교리에 대한 언급이 있고 난 후에, 실천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실천을 강조하는 최근의 신학은 '바리새 신학'이다. 변형된 위선만을 조장하는 위험한 신학이다(125쪽).'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저자야말로 성경을 많이 모르는 듯 하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교리를 주장하신 적도 없고, 그분은 교리를 설명하신 적도 없다. 그분이 2천년 전에 이 땅에 오셔서 하신 것은 가난한 자들과 죄인들, 그리고 세리와 창녀들의 친구가 되셨으며, 병든 자들을 고쳐주신 것이었다. 그렇다면, 저자의 논리대로라면 예수야말로 '책상신학'의 선두주자이며 '바리새 신학'을 한 사람이며 변형된 위선만을 조장하는 위험한 자가 되는 것이다.

본서의 저자는 아마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있는 바울의 신학과 예수가 몸으로 보여준 진리 자체를 혼동하고 있는 듯 하다. 바울의 신학은 그가 처한 선교적 상황에서 나온 것이며, 그가 가진 예수에 대한 신앙고백인 것이다. 저자는 이를 마치 예수의 진리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무식의 소치를 행하는 자는 과연 누구인가?

물론, 이러한 저자의 오류에도 불구하고 그가 보여주는 목회사역에서의 열정은 본받을만하다. 하지만, 잘못된 열정이 커다란 비극을 잉태함을 우리는 역사에서 종종 보았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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