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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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손님'은 이 땅에 언제인가 '손님'으로 찾아와 지금껏 '주인'의 행세를 하고 있는 미국이란 나라, 그리고 그들 아래에서 주인의 주체성을 잃어버리고 '손님'의 눈치를 보기에 여념이 없는 우리네 슬픈 현실이 먼저 떠올려지는 소설이다.

물론 저자는 본서에서 '손님'을 이 땅에 찾아온 기독교와 맑시즘이라는 두 가지 거대 이데올로기를 지칭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 땅의 '주인' 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는 무교(巫敎)의 최대 종교제의인 '굿'의 형태를 빌어 소설을 풀어나가고 있는 것이리라.

이데올로기의 꼭두각시가 되어 형제와 이웃간에 서로 정죄하고 이념의 차이로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행태를 저질렀던 해방이후 우리네 민족의 아픈 과거를 두 '손님'인 이데올로기의 맹점으로 보고 저자는 소설을 풀어간다. 또한 우리네 주체적 종교행위인 굿의 하나인 황해도 '진지노귀굿'의 12마당을 기본 틀로 산자와 죽은자들의 각각의 회상과 현실의 만남, 그리고 산자와 죽은자의 만남들을 통해 이 땅의 '주인'이면서도 사실은 '손님'인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주체성을 잃고 자신의 인성마저 잃어버리고 정신을 이데올로기에 빼앗겨 버렸던 과거의 슬픔을 작가는 하나하나 풀어간다. 여기에서 저자는 각각의 등장인물의 경중을 떠나 그들 각각의 시각에서 풀어나감으로써 '손님'의 희생자들이 되었지만 결국 작품에서는 각자 '주인'의 역할을 하게 하는 재미난 문학적 기법을 사용하고 있음이 눈에 띈다.

굿의 진정한 목표는 이 땅의 조화와 우주의 화해에 있다. 산자와 산자간, 산자와 죽은자간, 또는 죽은자와 죽은자간의 한을 풀고 진정한 화해를 이루는 것이 바로 굿이 지향하는 궁극점이다. 이런 면에서 작가는 각기 '손님'의 희생자들인 등장인물들의 화해를 향해 글을 풀어간다. 굿이 산자와 죽은자 서로간의 화해를 지향하고 있기에, 그의 작품 역시 죽은자와 산자의 자유로운 연출을 통해 이들의 화해를 향해 나아간다. 하지만 굿에서 화해의 가장 커다란 도구인 카타르시스가 작품 중에는 적게 등장하는 것이 아쉬운 점이기도 하다. 아마도 문제에 대한 통찰력을 독자들에게 주고자 함에 저자가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리라. 또한 카타르시스가 약한 이유는 아직 우리사회가 그런 카타르시스를 통한 화해를 산출하기에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음을 작가가 반영한 것일 수도...

저자가 가장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바로 '손님'에게 주체성을 빼앗겨 버린 '주인'의 잘못을 꼬집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또한 여기에서 더욱 발전시켜 현실 속의 우리네 삶에서 우리네가 '손님'에게 '주인'자리를 내주고 있음을 돌아보게 하고자 함이 아닐까? 특히, '손님'인 미국이 오히려 우리의 '주인'이 된 현실에야...

본서는 또한 인간이 어디까지 몰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서로간의 복수의 끝이 결국 어디인지를 떠올려준다. 지금의 현실에선 더욱 그런 반성을 하게 한다. 끔찍한 테러와 그의 보복이란 명목으로 또 다른 형태로 아니 더욱 무자비한 형태로 가해지고 있는 미국의 공격, 이러한 폭력 앞에 과감히 반대하기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영원한 '손님'인 미국의 눈치를 보며, 전쟁에 동조를 공언한 전년도 노벨 평화상 수상자, 또한 세상의 '주인'을 자처하는 우리네 '손님'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전쟁을 외치는 우리네 백성들, 그리고 자신들의 대립구도에 종교라는 허울을 이용하는 정치인들, 그리고 그 종교의 맹목성에 함몰되어 통찰력을 상실한 많은 종교인들. 이러한 모든 것이 결국은 나를 '손님(어떤 손님이던 간에)'에게 내주고 나 자신을 상실한 수많은 '주인'들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닐는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슬픈 현실이 단순히 테러가 그 시발점이 아니라, 테러를 일으킨 그 생존현실에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통찰력을 상실하고 그저 눈에 보이는 데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은 결국 우리가 '손님'에 나를 맡겨버리는 것이 아닐까?

결국 저자는 우리네 삶에서 우리들이 '손님'에 나를 빼앗기지 않고 진정한 '주인'을 찾아가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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