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윈터의 망명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19
로버트 리텔 지음, 강호걸 옮김 / 해문출판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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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시대의 첩보전은 이제는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버린 지 오래입니다. 르윈터의 망명이란 제목의 이 소설은 바로 그 구시대의 유물인 첩보전입니다. 한 망명자를 사이에 둔 미국과 소련의 치열한 머리싸움이 전개되는데, 묘하게 빠져들게 됩니다.

 

첩보전이라고 해서 최첨단 무기가 등장하거나 어마어마한 능력자가 등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최고 첩보기관인 CIA는 최첨단 무기는커녕 예산 문제로 허덕이는 웃픈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하다못해 총 쏘는 장면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총 쏘는 장면이 등장하긴 하는데, 그건 첩보전에서 상대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총격전이 아닌 첩보전을 대비한 사격연습입니다. 그나마 이런 사격연습을 왜 했는지 알 수 없게 상대를 향한 무력시위는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희한한 첩보전이 다 있을까요? 그런데, 묘하게 빠져들게 됩니다. 오히려 서로를 속이기 위한 치열한 머리싸움이 첩보전의 진수를 맛보게 해줍니다.

 

르윈터는 미국 MIT 대학의 교수입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미국의 대 소련 다탄두 각개목표 재돌입 미사일(MIRV)의 공식을 가지고 일본에서 소련 대사관으로 망명을 요청하게 됩니다. 이 공식이 사실이라면 소련은 미국의 다탄두 가운데 가짜를 식별할 수 있게 되고, 진짜 미사일의 궤도 역시 공식을 통해 알아내게 됨으로 미국을 상대로 순식간에 우위에 설 수 있는 엄청난 정보입니다.

 

이러한 르윈터의 망명을 두고 소련과 미국의 두뇌싸움이 시작됩니다. 과연 르윈터가 제공하는 정보가 진짜일까? 르윈터의 망명은 무엇 때문에, 그리고 무엇을 노린 것일까? 르윈터를 받아줘야 할지, 그리고 르윈터의 망명을 방해해야 할지, 다양한 두뇌싸움이 펼쳐집니다. 아니 언젠가부터 르윈터의 정보가 진짜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것을 어느 쪽이 더 효과적으로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과제가 되기도 합니다. MIRV 공식을 둘러싼 미국과 소련, 소련과 미국의 속고 속이는 이중 플레이, 아니 이중, 삼중, 사중의 두뇌싸움을 펼치게 됩니다. 과연 승자는 어느 쪽일까요? 그리고 르윈터는 정말 무엇 때문에 망명하게 된 걸까요? 무엇보다 어느 쪽이 치열한 두뇌싸움에서 승자가 될 수 있을까요?

 

참 묘한 느낌의 첩보미스터리 소설입니다. 어쩌면 이런 두뇌싸움이야말로 진정한 첩보전 아닐까요? 이 작품은 1973년 영국 추리작가협회상(골든 대거상)을 수상한 작가의 데뷔 작품이라고 합니다. 솔직히 처음엔 조금 집중이 안 되었지만, 어느 샌가 몰입하여 읽게 됩니다. 작가의 또 다른 작품 복명이란 소설은 반대로 소련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니 이 역시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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