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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놀 / 2022년 8월
평점 :
어린 시절 엄마에게 버림받은 “나”. 나는 내면에 강하고 어두운 존재 R을 품고 성장했다. 악한 짓조차 서슴지 않고 해치울 수 있는 R이란 존재를. 성장하며 점차 R을 몰아내고 평범하고 따분한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나. 그런 나에게 어느 날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미궁사건인 “히오키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가 다가온다.
밀실이 된 집안에서 발견된 일가족의 시신, 부조화스럽게도 아름다운 부인의 알몸의 시신, 그 시신을 장식한 종이학, 그리고 남편과 아들의 시신, 여기에 홀로 수면제를 탄 쥬스를 마시고 벽장 속에서 잠들었다 유일한 생존자로 발견된 어린 딸. 평소 아내의 바람을 의심하며 집안 곳곳에 cctv를 설치해놓은 가정. 그런데, 어디에도 남편의 출입은 찍히지 않았는데, 직장에 간 남편 역시 시신으로 집안에서 발견되었고, 커다란 어른에게 두들겨 맞은 아들의 시신, 하지만, 성인은커녕 작은 아이조차 출입할 수 없는 밀실화 된 집안.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끝내 미궁사건으로 남게 된 “히오키 사건”, 그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여성이 “나”에게 접근해오게 되고 둘은 자연스레 관계를 맺는 사이가 된다.
변호사를 꿈꾸는(아니 꿈꾸는 척하는) 나는 이렇게 “히오키 사건”의 진상에 접근하기 시작한다. 그러는 사이 “나”는 한동안 몰아냈다 여겼던 R이 점차 내면에서 꿈틀거리며 살아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울러 “히오키 사건”의 놀라운 진상에 접근하게 되는데. 과연 “히오키 사건”의 진범은 누구일까? 나는 이 사건의 진상에서 무엇을 얻게 될까?
소설 『미궁』은 일그러진 가정의 끔찍함을 보여준다. 한 사람의 일그러짐이 또 다른 가족의 일그러짐을 낳게 되고, 온통 일그러져버린 가정. 누군가 한 사람이 없어지면 이 이상한 공간은 사라지게 될 수 있다는 묘한 희망을 품어 버린 가정. 어디에라도 있는 평범한 가족이 그들에겐 없었던 먹먹한 가정에서 펼쳐지는 상상을 초월하는 범죄의 모습에 입이 떡 벌어지게 된다. 가족의 균형이 뒤틀리기 시작하면 그중에서 가장 약한 자에게 그 무게가 고스란히 덮쳐들게 된다는데, 정말 그럴까? 혹시 살아남은 자가 가장 강한 자가 아닐까? 가장 약한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말이다.
나카무라 후미노리의 작품은 처음 접했는데, 묘한 느낌이다. 참혹하고 끔찍한데, 아니 토 나올 정도로 추한 모습 속에 묘한 먹먹함과 아름다움이 감춰져 있다. 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