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계획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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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소설 조인계획이란 책이 국내에선 처음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작가의 신간이 아니다. 발표된 해가 자그마치 1989년이다. 그러니 어느덧 30년 이상이 지난 작품인데, 이제야 번역되었다니, 국내에 수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작가의 작품이 이제야 선을 보인다니 왜 그럴까? 의문이 든다. 소설을 읽어본 후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재미없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 재미없다니, 이게 무슨?

 

물론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를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나의 경우엔 썩 재미있지 않았다는 것이 솔직한 평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많겠지만, 나 역시 작가의 작품을 좋아해서 읽지 않은 작품보다는 읽은 작품이 훨씬 많다. 아마도 한 작가의 작품으로 따진다면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을 제일 많이 읽었을 게다. 그리고 그 많은 작품들 중 거의 모두를 재미나게 읽었다. 그럼에도 어쩐지 이 작품은 읽는 내내 큰 흥미를 못 느꼈던 게 사실이다. 물론 이는 전적으로 개인의 취향일 것이고, 어쩌면 이 작품을 읽을 당시의 개인의 상황이나 컨디션에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썩 재미없었던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의미가 있는 것은 이 책은 작가 입장에서는 상당히 실험적인 작품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먼저, 이 작품 속에서 추리를 해나가는 당사자는 놀랍게도 범인이다. 작품은 범인이 누구인지 처음 부분에서부터 독자에게 알려준다. 그리고 범인 역시 자신의 범행을 스스로 인정한다. 그럼에도 범인이 추리를 해 나간다는 전개가 신선하다. 실제, 이 작품의 이런 방법을 내가 좋아하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인 니시자와 야스히코는 그의 작품 살의가 모이는 밤에서 차용한다(이 작품 역시 올해(2022) 국내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그만큼 이런 전개가 나름 신선했다는 반증일 게다.

 

또한 이 작품은 작가의 초창기 작품(등단 4년째 작품)임에도 작가의 중기 작풍이라 말할 수 있는 사회파소설의 분위기를 상당히 풍기고 있다는 점이다(물론 작가의 작풍을 칼로 무를 베듯 본격추리소설사회파소설감동소설로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작가의 소설은 일정부분 위의 도식으로 흘러간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의 실험정신이 상당히 반영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이 소설 역시 본격추리소설의 범주에 속한다. 트릭이 존재하고 탐정의 역할을 맡은 자들이 등장하니까. 그럼에도 본격추리소설을 한참 발표하던 시기의 사회파소설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는 점은 이미 작가가 이처럼 사회파소설에 대한 애정을 갖고 준비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소설은 스키점프의 절대 강자인 니레이란 선수가 스키점프대에서 날아올라 추락하여 죽음으로 시작된다. 그것도 자신의 애인 앞에서 맞게 된 죽음. 그런데, 니레이의 사망원인은 사고사가 아닌 독살이다. 누군가 니레이에게 독을 먹였다. 이렇게 스키점프 대회에 참가했던 여러 선수단들에 속한 자들이 용의자의 테두리 안에 들어간다.

 

수사를 진행하는 가운데, 경찰에게 투서가 날아온다. 아무개가 범인이라고. 그리고 그 범인에게도 쪽지가 날아온다. 자수하라고. 그렇게 지목된 당사자인 미네기시(피해자 니레이의 코치)는 범인이 맞다. 소설의 앞부분부터 독자들에게 이 사람이 범인이라는 것을 소설은 밝힌다. 여기에서 범인의 추리가 시작된다. 과연 누가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는 걸까? 어떻게 내가 범인이라는 것을 알까? 과연 그 사람은 누구일까? 이렇게 범인은 사건을 또 다른 방향에서 추리해나가게 된다. 바로 이런 점이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이 소설의 독특한 점이다.

 

물론, 소설 속 추리는 그것만은 아니다. 형사들은 당연히 범인이 누구인지를 추리한다. 그러면서 과연 그 동기는 무엇인지를 추리한다. 그 동기를 찾는 작업이 소설이 우리에게 들려주려는 또 하나의 커다란 음성이다.

 

과연 과학적 훈련의 한계는 어디이며, 어디까지 인정해줘야 하는가? 과연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선수들을 찍어내는 것이 허용될 수 있는 것일까?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물론, 알리바이 트릭이 어떤 식으로 범행에 사용되었는가와 같은 트릭 역시 관심의 대상이긴 하지만, 범행의 동기가 소설의 가장 큰 관심사다. 그리고 여기에서 바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 그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작가의 사회파소설의 원조 격이다. 이런 의미만으로도 이 소설은 작가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겐 꼭 읽어봐야 할 소설임엔 분명하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하는 스포츠맨의 비뚤어진 욕망을 소설을 통해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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