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파단자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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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바야시 야스미란 작가의 작품은 그의 유작인 미래로부터의 탈출(서울: 검은숲, 2021.)을 통해 처음 만났다. 그 후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하던 차 기억 파단자란 작품을 만났다. 첫 느낌은 미래로부터의 탈출과 상당히 비슷하다는 점. 무엇보다 기억의 조작이나 반복되는 그 느낌이 유사하다. 찾아보니 작가의 작품 가운데는 이런 유의 작품이 제법 되는 듯싶다.

 

소설은 주인공 타무라 니키치가 낯선 방 안에서 눈을 뜨며 시작된다. 타무라 니키치의 기억은 사고가 난 그 시간에 머물러 있다. 번화가에서 불량배들에게 시달리던 친구를 돕다 머리를 크게 다친 그 순간에 말이다. 그렇게 니키치는 전향성 기억 상실증이란 병에 걸려 기억이 수십 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잠을 자고 일어나면 기억은 다시 리셋 되어 버린다. 사고가 난 이후 자신이 무엇을 하였으며 누굴 만났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심지어 이사 온 집도 모를 정도니 그 심각성이 어떠한지 알 수 있다.

 

눈을 뜨면 그의 곁에는 언제나 노트 하나가 놓여 있다. 자신의 상실된 기억을 보안해줄 노트가. 그곳엔 자신의 상황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를 알려주는 내용들이 적혀 있다. 그리고 이 노트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며, 조심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등이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노트에 특별한 문장 하나가 새롭게 적혀 있다. “나는 지금 살인마와 싸우고 있다.”란 문장이.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인가? 기억이 기껏 수십 분밖에 유지할 수 없는 사람이 살인마도 싸우고 있다니. 그런데, 정말이다. 그것도 최고 악질 살인마와 싸우고 있다. 피나는 머리싸움을 말이다.

 

바로 키라 미츠오라는 살인마인데, 이 사람은 아주 악질인 악당이다. 그에겐 특별한 능력이 있다. 누구라도 몸에 손을 대고 속삭이면 그 사람의 기억을 조작할 수 있는 엄청난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 키라는 이 능력을 이용하여 범죄로 일상을 살아간다. 편의점에 들어가 마음껏 물건을 가져갈 수 있고, 돈을 훔칠 수도 있다. 상대의 기억을 조작하기만 하면 되니까. 자신의 마음에 드는 여인은 누구나 취할 수 있고, 마음대로 죽일 수도 있다. 이렇게 키라는 수많은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고, 수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마다.

 

그런 그가 또 한 번의 살인을 행할 때, 마침 니키치와 다른 두 사람이 현장을 목격하였다. 하지만, 키라는 자신의 범행을 목격한 자들의 기억을 모두 조작해 놓는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살인을 벌인 것으로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전향성 기억 상실증에 걸린 니키치다. 니키치는 자신의 기억이 수십 분밖에 이어지지 않음을 알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수 시간 전의 기억이 머릿속에 남아 있다. 자신의 증상이 호전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기억하지 못하는데, 특별한 내용들만이 기억에 남아 있다. 이를 통해 니키치는 자신의 기억에 또 다른 의미의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고, 누군가 자신의 기억을 조작하려함을 알게 된다. 이렇게 니키치는 살인마 키라에 대해 눈치 채게 되고 그 일을 자신의 수첩에 하나하나 남겨둔다.

 

물론, 니키치는 또 다시 기억이 리셋 되지만, 노트에 적힌 내용을 통해 자신이 살인마와 피나는 머리싸움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과연 니키치는 기억을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살인마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기억이 계속하여 리셋 되는 전향성 기억 상실증 환자, 그리고 타인의 기억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살인마, 이 둘의 대결은 누가 보더라도 승자가 정해져 있다. 바로 이 점이야말로 소설 속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확연한 한계 상황 속에서 과연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쫓기는 입장의 조바심 등이 소설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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