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다 에프 그래픽 컬렉션
루이스 트론헤임 지음, 위베르 슈비야르 그림, 이지수 옮김 / F(에프)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약혼자와 함께 여행을 계획하고 휴양지에 도착한 커플. 그런데, 그만 끔찍한 사고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커플은 바닷가를 거니는데,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간판 철판이 날아오고. 이 철판에 의해 약혼자는 죽음을 맞게 된다.

 

즐겁고 행복해야 할 여행지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장례를 치르게 된 여인. 그러나 여인은 약혼자가 철저하게 준비한 계획에 따라 그 여행지에 그대로 머무르기로 한다. 약혼자가 예약한 공연을 보고, 예약한 숙소에 머물며, 예약한 식당에 가고, 약혼자의 계획을 하나하나 홀로 더듬어 간다.

 

푸른책들의 그래픽노블 임프린트 F에서 출간된 머물다란 작품의 줄거리다. 내용은 상당히 무겁다. 그리고 그 시작이 너무 강렬하다.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여인, 그럼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모습이 오히려 더욱 조마조마하다. 간당간당 버텨내는 것만 같은 느낌에. 한 순간 뻥하고 터져버리진 않을까 조마조마하기만 하다. 게다가 주변의 밝은 표정 속에서 홀로 무표정한 모습이 먹먹하기만 하다.

 

그런 여인에게 한 남자가 다가온다. 남녀 간의 사랑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고, 인간 대 인간으로 다가온다. 남자에겐 아내가 있다. 심지어 남자 역시 학창 시절 사고로 남성의 심볼이 없다. 그럼에도 독자 입장에선 혹시 흑심을 품고? 생각하게 되지만, 아울러 작품 속 여인 역시 그런 의심을 품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다.

 

표현할 수 없을 슬픔 가운데 함몰될 수밖에 없는 여인에게 끼어든 낯선 타인, 그로 인해 여인은 일상을 되찾아간다. 그런 과정이 잔잔하면서도 묘한 매력을 품고 있는 작품이다. 잔잔한 가운데 여인의 표정 변화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점점 무표정한 모습(슬픔을 안으로 삼킨 모습)에서 웃는 표정이 점점 많아진다. 결국 여인은 약혼자의 짐을 그곳에 놓고 떠난다. 이제 슬픔의 시간들은 뒤로 하고 주어진 삶을 향해 나아갈 것이라 추측케 한다.

 

우린 누구나 비극에 노출되어 있다. 그럼에도 그 비극이 나만은 피해갈 것이라 막연하게 믿고 살아가지만 말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비극이 나의 것이 된다면 어떨까?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그 비극, 그 불행, 그 아픔을 잔잔하게 벗어나는 작품 속의 힘이 어쩌면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무거운 분위기일 수밖에 없는 작품, 그러나 그 무거움을 담담하게 풀어나가는 작품이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