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날 정해연의 날 3부작
정해연 지음 / 시공사 / 202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금평의 어느 강 위, 놀이 배를 타던 연인은 계획이 있었다. 강 위에서 멋진 프러포즈를 하리라는 계획이. 하지만 그 계획은 노에 걸린 한 물체로 인해 뒤죽박죽이 되고 만다. 노에 딸려 강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온 건 작은 아이의 백골. 그리고 시체의 목에 걸린 목걸이. 그건 바로 예원이 직접 만들어 아들 선우 목에 걸어줬던 목걸이다.

 

예원과 선준 부부의 삶은 위태롭기만 하다. 3년 전 아들 선우를 잃어버렸기 때문. 그런 선준에게 금평의 어느 형사에게서 연락이 온다. 아들의 시신을 발견한 것 같다는 연락이. 유전자 검사를 해봐야 확실하겠지만, 아들 선우의 목걸이를 건 아이의 시신이라는 말에 선준의 삶을 위태롭게 지탱해주던 바닥 하나가 또 허물어진다.

 

하지만, 아직 예원에게 말할 순 없다. 확실해지기 전까진. 과연 아이 시신은 선우의 것일까? 선우가 맞다면 이젠 이 끔찍한 시간들이 끝나는 건가? 만약 선우가 아니라면 선우는 과연 어디에 있는 걸까? 그리고 또다시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끔찍한 시간을 지나가야만 하는 걸까?

 

아이를 찾아 헤매는 일에 모든 것을 걸었던 예원, 예원은 급기야 분노조절장애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아내가 사라졌다. 그곳 병원에 입원해 있던 한 아이를 데리고. 선우가 살아있었다면 딱 그만할 나이의 아이, 로운. 엄마에게 관심 받고 싶은 불쌍한 아이 로운. 그런데, 로운은 예원의 집에서 선우의 사진을 보자 그 아이를 봤다고 말한다. 게닥 이름을 알고 있었다. 선우라는 이름을. 아니 이선우라고 성까지. 여기에서 두 부부는 잃어버린 아들에 대한 한 자락 단서를 얻게 된다. ‘울림기도원이라는 단서를. 과연 그곳은 어디인가? 그곳에 정말 선우가 있는 걸까? 만약 선우가 그곳에 있다면, 강바닥에서 올라온 아이는 누구의 시체란 말인가?

 

무엇보다 그토록 똑똑하던 아이, 부모의 전화번호를 모두 알고 있는 아이가 어찌 부모에게 전화 한 통화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걸까? 과연 선우를 잃어버린 그날 밤, 불꽃놀이 불꽃이 밤하늘을 밝히던 그 밤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소설은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의 애끓는 심정이 가득 느껴져 부모 된 입장에서 읽는 내내 먹먹하고 아팠다. 하지만, 아픈 만큼 소설에 대한 몰입도는 깊었다. 소설의 속도감 역시 빠르다. 그리고 그날 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드디어 그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이야말로 소설의 가장 큰 반전이다. 아울러 한없이 아프고 먹먹하다.

 

또한 영혼을 파괴하는 사이비 종교의 끔찍함에 치를 떨게 된다. 종교다움을 상실한 종교, 종교의 탈을 쓴 악마들이 얼마나 악할 수 있는지를 소설은 너무 잘 보여준다.

 

소설을 읽는 내내 소설의 제목인 구원의 날에 희망을 걸게 된다. 이 제목이 배반하지 않길 바라며 아이를 잃어버린 부부에게 감정을 투영하게 된다.

 

소설은 아이를 유괴하고 아이의 영혼을 파괴하는 파렴치한 존재들의 악마성을 드러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소설은 부모로서의 부족함을 한없이 돌아보게 만든다. 연약하기만 한 아이들을 향해 여전히 폭력이 난무하며, 아이들을 외롭게 만들고, 때론 귀찮아하기만 하는 덩치만 크고 나이만 먹은 존재들의 부족함에 대해 반성하게 만든다. 사회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는 부모답지 못한 부모들의 모습을 변론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누구나 그 악을 휘두르는 부모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에 깜짝 놀라게 된다. 이런 놀람과 반성, 그리고 부끄러움을 넘어 부모로서 자녀들 앞에 바르게 서야겠다는 결단도 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그래서 부모에게는 또 다른 구원의 날로 인도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읽는 내내 몸살을 잃듯 먹먹했던 것만큼 작가의 매력에 푹 빠졌던 소설이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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