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코 서점 북스토리 재팬 클래식 플러스 4
슈카와 미나토 지음, 박영난 옮김 / 북스토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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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이젠 무색해진 시대를 살고 있다. 하룻밤 사이 세상은 무섭게 변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시대와 어쩐지 동떨어진 것만 같은 기묘한 미스터리 소설집을 만났다. 사치코 서점이란 제목의 소설집으로 책 속엔 도합 7편의 단편들이 실려 있다.

 

모두 아카시아 상점가라는 곳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다. 이곳은 아케이드가 설치되어 있는 상점가다. 헌책방이 있고, 중고 레코드점이 있으며, 식당과 술집이 있는 자그마한 상점가. 레코드점에선 언제나 <아카시아 비가 그칠 때>라는 노래가 흘러나온다(책 속에서 이 노래가 자주 언급되기에 이 노래를 찾아 들어봤다. 이 노래는 1960년대 일어난 안보협정 반대투쟁의 상징과 같은 곡이란다. 실제 투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면서도 60년대 일본의 상징이 된 노래, 놀랍게도 이 노래를 부른 가수의 이름이 니시다 사치코다. 그렇다. 작가는 사치코란 이름을 이 노래에도 감춰뒀던 것. 이 사실을 알게 되자 조금 더 기묘한 느낌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곳엔 고양이들의 은신처이자 저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전설이 깃든 낡은 절 가쿠지사가 있다.

 

7편의 단편은 별개의 이야기이면서도 서로 연결되고 있다. 물론 촘촘하게 연결된 것은 아니지만, 모든 이야기가 사치코 서점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특히, 사치코 서점의 주인과 유령에 대한 경험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연결된다. 마지막 단편인 마른 잎 천사를 읽고 나면 어째서 유령에 대한 특별한 경험을 한 이들이 사치코 서점 주인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된다. 물론 애틋하고 먹먹한 느낌을 갖게 되지만 말이다.

 

각 단편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사치코 서점 주인 외에는 드물게 다른 작품 속에 잠깐 등장하는 식이다. 물론, 이 역시 아주 드물다. 아울러 7편의 단편 하나하나를 읽어갈 수록, 그 무대가 되고 있는 아카시아 상점가의 풍경은 점점 또렷해진다. 이 역시 소설이 주는 작은 선물이다.

 

모든 소설에 유령이 등장하니 으스스한 느낌이 없진 않다. 하지만, 솔직히 무섭지는 않다. 도리어 소설 전반에 애틋함, 먹먹함, 그리고 그리움이 스며있다. 다른 이들이 볼 때, 미심쩍고 수상한 행동을 하는 헌책방의 늙은 주인. 그 주인의 수상한 행동에는 젊은 시절 씻을 수 없는 잘못을 아내에게 범했던 한 남편의 수십 년의 참회와 그리움이 담겨 있다. 그래서 먹먹한 감동을 느끼기도 한다.

 

첫 번째 이야기인 수국이 필 무렵에선 아카시아 상점가 그곳 낡은 아파트에 이사 온 작가 지망생 가 수상한 젊은이를 목격하게 되는데, 알고 보니 그곳은 식당 주인이 살해당한 현장이다. 범인은 오리무중, 그래서 는 계속해서 보게 되는 그 수상한 젊은이를 범인이거나 형사로 생각하게 되는데, 둘 다 아니다. 그럼 그는 누구인걸까? 그 젊은이는 다름 아닌 살해당한 식당 주인이었던 것. 그런데, 왜 그 영혼은 젊은이의 모습으로 돌아와 자신의 식당을 그토록 지켜보고 있던 걸까? 사치코 서점 주인의 생각을 는 이렇게 들여다본다.

 

분명히 그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누군가를 지키려는 의사를 가진 자는 분명히 가장 강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돌아온다. 그렇지 않으면 지킬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희락정 주인은 젊은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42)

 

살해당한 식당 주인에게는 자신이 지켜주고 돌봐줘야만 하는 장애를 가진 딸이 있었던 것이다. 이를 위해 자신의 가장 강한 모습, 젊은 모습으로 되돌아와 남겨진 가족들을 지키려 하는 영혼, 이는 잔잔한 감동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소설 전반에 이런 묘한 따스함, 감동이 잔잔히 흐르고 있다. 그렇기에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가슴은 먹먹해지며 잔잔하되 깊은 감동에 몸을 떨게 된다. 솔직히 소설은 재미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소설을 다 읽은 후엔 기분 좋게 배부른 느낌이다. “기묘한 미스터리 걸작이란 묘사가 전혀 과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만큼, 좋다. 작가의 다른 책들을 찾아보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이는 더욱 확실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첫 번째 이야기인 수국이 필 무렵과 마지막 이야기인 마른 잎 천사가 제일 좋았다. 물론, 다른 이야기들 역시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기쁨이 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다섯 번째 이야기인 빛나는 고양이에 묘한 매력을 느낄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딱히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물론 잔잔한 감동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괜스레 낡은 절 가쿠지사의 풍경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물론 사치코 서점 그 헌책방의 쾌쾌한 냄새가 문득 그리워지기도 하고 말이다.

 

사치코 서점의 주인이 날마다 가쿠자사를 방문하는 이유는 기적을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겐 기적이 찾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기적은 그것을 원하는 자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모양이다. 세상이란 것은, 비록 저세상이라고 할지라도,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는 모양이다.(266)

 

그런데, 정말 그럴까? 어쩌면 오늘도 기적이 날 향해 찾아오고 있는 건 아닐까? 사치코 서점은 그것을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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