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유희 레이코 형사 시리즈 5
혼다 데쓰야 지음, 이로미 옮김 / 자음과모음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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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 데쓰야의 <레이코 형사 시리즈> 5번째 책을 만났다. 감염유희란 제목의 책인데, 책은 단편소설집처럼 되어 있다. 감염유희, 인쇄유도, 침묵원차, 추정유죄이렇게 네 편의 단편이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이들은 사실 하나로 묶여 있다.

 

무엇보다 이번 책의 특징은 레이코가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잠깐 두어 번 얼굴을 비추긴 한다. 하지만, 레이코가 주인공이 아니다. 감염유희에서는 시리즈 속에서 레이코의 라이벌로 등장하는 베테랑 형사 가쓰마타가. 인쇄유도에서는 지금은 퇴역경찰인 구라타 슈지가(인쇄유도속에선 현직 형사다.). 침묵원차에서는 레이코 형사의 부하였던 신참 하야마 노리유키가. 이렇게 각기 주인공들이 다르게 진행된다. 그러니, <레이코 형사 시리즈>이긴 하지만, 레이코 주변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외전 격이다.

 

또 하나 각각의 이야기는 하나하나의 단편처럼 느껴지지만, 마지막 추정유죄에 이르면 앞에서 등장했던 사건들,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다 함께 어우러져 이들 사건이 모두 연결된 하나의 사건임을 알려준다. 그러니, 결과적으로는 단편소설집이 아닌 장편소설인 셈이다.

 

마지막 이야기인 추정유죄를 접하기 전까진, 어쩐지 소설이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뭔가 메시지를 전하려다 보니 소설의 재미가 반감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데, 추정유죄를 읽다보면, 앞에서 부족하게 느끼던 부분이 모두 상쇄되면서, 각각의 이야기처럼 여겨졌던 사건들이 알고 보면 모두 하나로 연결된 사건임을 알게 되면서 도리어 짤 짜인 하나의 판이라는 생각을 든다. 앞에서 살짝 느꼈던 실망은 금세 사라지게 된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사건들은 대부분 전직 관료 살인 사건이다. 이 사건들을 통해, 왜 이런 사건들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범인이 살인을 벌이는 목적 내지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접근하며, 소설은 일본 관료주의의 추악함을 고발하고 있다. 물론, 그럼에도 그들의 죄악을 고발하기 위해, 또는 그들의 나태함과 뻔뻔스러움을 정죄하기 위해 개별적 범행을 저지르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하는 질문을 내던지기도 한다.

 

공무원이란 자리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며, 국민에게 봉사하는 자리임을 망각한 채, 공직을 이용해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며, 또한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자들, 그러면서도 뻔뻔스럽게 점잖은 인격체인양, 사회 지도자인양 으스대는 고위 관료들의 행태를 소설은 끊임없이 고발하고 있다.

 

애초부터 국민이 피땀 흘려 낸 세금의 결실을 고작 농작물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는 놈들이잖아. 국민에게 봉사할 생각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던 거야. ‘()’이란 글자를 사기로 착각하는 썩어 빠진 놈들이니까.

 

이런 고위관료들을 처단하기 위해 모든 사건의 배후세력인 인물이 선택한 방법, 그 방법은 대단히 효과적이면서도 대단히 교묘하다. 그리고 끔찍하고. 이 모든 사건의 배후인물이 만든 사이트 제목은 이렇다. “Unmask your laughing neighbors.” “웃고 있는 이웃의 가면을 벗겨라.” 이들 웃고 있는 이웃은 점잖은 척 노년의 삶을 즐기고 있는 전직 관료들이다. 국민을 섬기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아니 백보 양보해서 국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생각조차 않는 관료들.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국민의 돈을 빼돌리고, 예산이라는 명목으로 여기저기 쓰고 뿌릴뿐더러 자신들을 위해 숨기는 자들. 수상한 법인들을 만들어 세금을 물 쓰듯 퍼부으며, 그 자리에 은퇴 후 낙하산으로 자리를 잡는 자들. 결국 이들은 젊잖게 웃는 가면 뒤에는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탐욕스러운 모습만이 도사리고 있다.

 

이들을 처벌하려 해도 어떤 수단도 없는 소시민들, 그런 그들이 이들 전직 고위 관료들의 정보를 제공받음으로 그들을 향한 울분과 정의의 구현이란 이유로 테러를 행함으로 또 하나의 범죄로 나아가는 모습을 소설을 보여준다. 결국 이런 모습을 통해, 고위 관료들의 작태에 대한 경고를 보내려는 게 아닐까 싶다. 너희들, 그러다 이처럼 테러의 대상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레이코 형사가 나오지 않아 조금은 실망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책장을 덮을 때엔 뭔가 묵직한 느낌을 갖게 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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