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 메리의 리본 하우미 컬렉션 1
이나미 이쓰라 지음, 신정원 옮김 / 손안의책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몇 년 전 이나미 이쓰라 원작의 사냥개 탐정 1이란 만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제목이 세인트 메리의 리본이었습니다. 그 원작 소설인 세인트 메리의 리본을 읽었답니다.

 

작가의 사냥개 탐정이란 소설의 전작으로 알고 읽게 되었는데, 전작인 것은 맞지만,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답니다. 세인트 메리의 리본은 오롯이 사냥개 탐정의 이야기로 채워진 책이 아니라, 여러 단편을 모아놓은 소설집이랍니다. 도합 다섯 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가운데 제일 마지막 소설인 세인트 메리의 리본이 바로 사냥개 탐정이란 캐릭터를 만들어내게 된 작품이며, 이 단편 소설을 이어 사냥개 탐정류몬을 등장인물로 한 연작미스터리소설집이 바로 사냥개 탐정이라고 하네요.

 

다소 하드보일드 풍의 작풍이 눈에 들어옵니다. 첫 번째 작품 모닥불이 그렇습니다. 모닥불은 사랑의 도피를 하다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살인청부업자들에게 쫓기던 주인공이 어느 모닥불 앞에서 마치 은거하던 무림 고수와 같은 노인을 만난 특별한 체험을 그려내고 있답니다. 모닥불 앞에 웅크리고 있던 연약하게 보이는 노인네가 갑자기 무림고수처럼 살인청부업자들을 쫓아내는 장면은 어쩐지 속이 시원하기까지 합니다. 게다가 이 노인이 사람을 평가하는 척도는 밭의 곡식을 함부로 밟느냐 그렇지 않느냐 랍니다. 남의 밭곡식을 함부로 밟는 인간은 못된 녀석, 조심하며 발을 옮기는 이는 돌봐주고 도와줘야 마땅한 착한 사람이라는 도식이 이 무림 고수와 같은 노인의 평가 기준이랍니다.

 

하나미가와의 요새보리밭 미션은 전쟁을 경험한 작가가 전쟁에 대한 아픔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미가와의 요새는 일본을 배경으로, 보리밭 미션은 영국을 배경으로 말입니다. 등장인물이 서로 다르고 입장이 서로 다르지만, 전쟁의 참혹을 담담하게 접근하고 있답니다.

 

종착역은 역에서 오랜 세월동안 포터 생활을 하던 고지식한 주인공이 어느 날 야쿠자의 검은 돈이 든 가방을 중간에서 훔치게 되는 이야기인데, 이 역시 어쩐지 통쾌함이 있습니다. 왠지 이날을 위해 오랜 시간 하찮게 여겨지는 직업 포터 역할을 해낸 것만 같아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뭐니 뭐니 해도 제일 재미난 단편은 세인트 메리의 리본이었답니다. 이야기 속 탐정은 류몬이란 사내랍니다. 잃어버린 사냥개만을 찾아주는 탐정이죠. 잃어버린 사냥개의 생사여부를 알아내고, 행방을 알아내 의뢰인에게 알려주는 일을 하는 독특한 탐정이랍니다.

 

그런, 류몬은 상당히 외골수인 사내랍니다. 물려받은 넓은 토지를 탐내는 삼류 야쿠자들과 겁 없이 대치하기도 하는 사나이랍니다(이런 장면 역시 하드보일드 느낌이 물씬 나는 통쾌한 장면이랍니다.). 무엇보다 류몬은 자신의 일에 세워놓은 원칙이 있답니다. 첫째, 사냥개만을 찾아준다는 거죠. 둘째, 어떤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이 동할 때, 의뢰를 수락한답니다. 야쿠자들이 잃어버린 애완견을 찾아달라고 찾아와도 꿈쩍하지 않는 담대함도 보여준답니다(이렇게 찾아왔다가 류몬이란 사내의 매력을 느끼고 친구처럼 되는 야쿠자 여성은 한국여성이랍니다. 류몬 역시 어머니가 한국여인이랍니다. 작가가 어쩐지 한국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런 류몬이 자신이 세운 원칙을 깨뜨리고 찾게 되는 개가 있답니다. 바로 앞을 보지 못하는 소녀가 잃어버린 맹도견이랍니다. 바로 잃어버린 맹도견을 훔쳐간 이의 먹먹한 사연에서 바로 이 소설의 세인트 메리의 리본이란 제목이 탄생하게 된답니다.

 

어쩌면 무뚝뚝하고 다소 엉뚱하기까지 한 캐릭터 류몬에게 또 하나의 감춰진 원칙이 있다면, 그건 자신이 세운 원칙을 언제든 깨뜨릴 수 있다는 원칙이 아닐까요? 앞을 보지 못하는 소녀를 위해 자신이 세운 원칙, 야쿠자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던 원칙을 사르르 깨뜨리는 이런 마음이야말로 소설 속 가장 반짝이는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강한 외면에, 부드러움과 따스함을 채우고 있는 사내, 류몬, 그가 만들어갈 두 번째 책, 사냥개 탐정에 대한 궁금함을 품으며 책장을 덮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